방탄소년단(BTS)은 현존 최고의 한류 아이콘이다. 그래미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 이어 이달 초 빌보드 뮤직 어워즈(BMA)까지 수상하면서 미국 3대 음악상을 석권했다. 한국 가수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권영설의 블루오션 시프트] BTS와 '오라버니'
성공한 혁신에는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다 통하겠지만, BTS의 성공에는 나름 철학적인 이유가 있다. 그들은 거대한 고객집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로 밀레니얼 세대다. 밀레니얼은 1980년대 초반 이후 태어난 사람들로, 청소년 시절부터 인터넷을 사용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다. 세계적으로 25억 명 정도로 추산되는 우리 시대의 주류 세대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등 정보기술을 쉽게 다루며 이전 세대와 달리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 BTS는 지난 2년간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메시지로 밀레니얼과 교감해왔다.

거대한 수요 장악한 대형 히트

최근 내놓은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는 심리학자 칼 융을 연구한 저작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모티브를 찾아낸 음악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신곡 ‘페르소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누군가 평생 물어온 질문/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

중독성 강한 멜로디 중심의 노래가 아니라 동시대가 겪는 아픔을 가사로 쓴 것이 BTS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들이 흘린 ‘피 땀 눈물’이 팬클럽 ‘아미’의 마음을 움켜잡았다.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도 세계인이 공감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BTS라는 대형 히트의 대척점에 전혀 다른 시장을 공략한 성공 케이스가 있다. 너무나 친숙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촌스럽기까지 한 정서로 소비자의 마음을 잡은 사례다. 트로트 ‘오라버니’의 성공이다. 이 노래가 장악한 시장은 주류문화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중장년이다.

‘오라버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만 100만 장의 DVD가 팔린 대형 히트 상품이다. 주류 미디어가 주도하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검증받은 ‘길보드 차트’ 1등 곡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금잔디는 김연자, 주현미를 잇는 트로트 메들리 가수로 ‘오라버니’를 포함해 휴게소에서만 3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고속도로 퀸’이다.

시장 키우는 창조적 가치혁신

놀랍게도 ‘오라버니’는 서울 등 수도권의 ‘먹물’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노래다. 지상파 출연 기회도 많지 않았고 주로 지방을 돌며 ‘행사’를 뛴 탓이 클 것이다. 유튜브에 ‘울산 서머 페스티벌 2016 오라버니’를 검색해보면 놀라운 장면이 연출된다. 수천 명의 울산 시민이 ‘오라버니’를 ‘떼창’으로 따라 부른다. 전국에 퍼져 있는 ‘노래교실’의 힘도 분명 컸을 것이다.

성공한 혁신이 지닌 공통점은 분명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다만 그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찾느냐가 문제다. BTS는 자신들이 가진 사명에 충실했다. BTS 멤버들이 공유한 자기 사명은 “10~20대가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받는 것을 막아내고, 당당히 음악과 가치를 지켜낸다”였다. 이 사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열혈팬이 됐다.

‘오라버니’는 이와 대조적으로 쉬운 멜로디와 가사로 누구나 따라 부르기 편한 정서를 자극했다. ‘날 사랑하신다 하니, 정말 그러시다니. (중략) 오라버니, 어깨에 기대어 볼래요….’ 최근 한 종편이 성공시킨 ‘미스트롯’의 바탕에는 ‘오라버니’가 개척한 거대 시장이 있었을 것이다. 시장은 살아 있고 새로운 혁신을 기다린다. 불황을 탓할수록 기회는 보이지 않는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