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R까기] 청약제도 또 고치는 정부, 문제는 '줍줍'이 아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무순위 청약 시행 2개월여 만에 또 손질
"과열 막겠다"…예비당첨자 확대 예정
계약 포기하는 원인 들여다 봐야
무순위 신청 자격에 '공급질서 교란자'도 포함
"과열 막겠다"…예비당첨자 확대 예정
계약 포기하는 원인 들여다 봐야
무순위 신청 자격에 '공급질서 교란자'도 포함
정부가 또 한번 청약제도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이번 타깃은 '무순위 청약'이다. 예비당첨자 비율을 확대해 무순위 청약으로 돌아가는 물량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무순위 청약은 이른바 '온라인 줄서기'로 불린다. 금융결제원의 '아파트투유'를 통해서 미계약·미계약에 대해 예약을 받아서다. 당초 정부는 밤샘 줄서기나 대리줄서기, 추첨의 공정성 시비를 줄이겠다며 지난 2월 무순위 청약을 도입했다. 무순위 청약은 청약을 받기 전에하는 '사전'과 계약기간이 완료되고 시행되는 '사후'가 있다. 시행 초기만 하더라도 '사후' 접수가 많았지만, 미계약이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사전'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무순위 청약은 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모델하우스에 야시장을 방불케하는 혼잡스러운 상황도 없어졌다. 분양 현장에서는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지만, 불과 2개월여 만에 또 제도를 뜯어고치게 됐다. 정부가 문제를 삼은 부분은 '무순위 청약(미계약분 공급) 물량이 과도하게 발생되는 점'과 '현금부자·다주택자가 일부 물량을 사들이는 상황'이다. 이른바 줍줍(줍고 줍는다는 줄임말) 현상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예비당첨자를 전체 공급물량의 80%(기타 40% 이상)까지 선정하고 있다. 이를 앞으로 5배수로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청약자격을 갖춘 실수요자(1·․2순위)가 보다 많은 기회를 갖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20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청약일정을 감안하면 앞으로 나올 단지들이 모두 해당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바람대로 예비 청약자를 늘리면, 현금부자의 '줍줍'은 사라지게 될까? 현장에서의 목소리는 '아니올시다'다. 이번에 내놓은 청약제도 개편에서 정부는 '물량 개수'를 제한하겠다고 나섰지만 '왜 물량이 남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어서다. 정부는 숫자 조정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의견이다. 5배수가 된 배경은 간단하다. 무순위 청약제도 도입 이후 진행된 5곳의 평균 청약경쟁률이 5.2대 1로 공급물량 대비 5배의 적정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해서란다.
국토교통부는 "예비당첨자가 대폭 확대되면, 최초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할 경우 당첨되지 못한 1·․2순위 내 후순위 신청자가 계약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며 "계약률도 높아지고 무순위 청약 물량도 최소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여기서 들여다봐야할 점이 '계약을 포기할 경우'다. 무주택자가 열심히 점수를 쌓아서 청약을 하고 심지어 당첨이 됐다. 가족들의 축하 속에 계약을 하려는데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부적격'과 '대출'이다.
그동안 이와 관련된 기사를 쓸 때마다 독자들의 부정적 반응들이 있었다. '부적격인걸 왜 몰라', '돈이 없으면 청약을 하지 말아야지', '대출 안되는 걸 어떻게 본인이 몰라' 등의 반응들이 있었다. 하지만 계약현장을 막상 가보면 안타까운 사연들이 한둘이 아니다. 몰랐던 가족의 빚이 있거나 소득산정에서 미끄러지는 경우, 집안의 사정으로 부모님을 다른 곳에 잠시 모셨다가 점수가 달라지는 경우 등이다. 물론 이러한 사정을 다 들어주자는 게 아니다. 복잡한 사정들을 차치하더라도 몇 십년간 무주택으로 살았을 당첨자들의 사정은 녹록치 않다. 집도 없이 전세 계약이 돌아올 때마다 맘을 졸였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집을 마련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 현실이었다. 그러다가 이제 무주택자에게 기회가 왔다고 해서 청약을 했더니 계약을 할 수 없단다. 청약통장 하나 간신히 유지하면서 무주택자들이 처음으로 집을 마련하기에 '대출'의 사다리는 부족하다.
현장 관계자는 "집을 사본 분들은 자금사정도 잘 파악하고 있지만, 무주택 분들은 처음이다보니 뜻하지 않게 계약이 안되는 조건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대출길이 막히다보니 당첨이 되어도 계약을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속출한다는 얘기다. 현재의 대출조건에 있어서 현금부자들에게 남은 집이 돌아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상황이다.
또 한가지 정부가 간과하는 게 있다. 바로 무순위 청약의 신청자격이다. 지난 2월 발표된 무순위 청약자격 세부 내용에 따르면, 무순위 청약에는 '공급질서 교란자'가 참여할 수 있다. 공급질서 교란자는 주택법이 정하는 증서 또는 지위를 양도·양수하거나 이를 알선한 자들이다. 쉽게 말해 분양권 불법전매나 조합원 지위 불법양도, 이면계약 등을 한 자들이다.
부자들이 줍줍하는 건 막겠다면서 자격에는 버젓이 불법을 한 자들에게는 줍줍이 가능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다. 유주택자도 청약이 가능하고 당첨자 관리도 하지 않는다. 향후 다른 주택 청약시에 제한도 받지 않는다. 부자들의 줍줍이 싫다면 유주택자 청약을 제한하고, 무분별한 줍줍을 막겠다면 당첨자를 관리하면 된다. 기본적인 자격에 있어서 과열이 될 수 있는 온갖 자격을 넣어놨다. 그러구선 무순위 청약 과열의 원인을 '유주택자와 부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부동산 청약 시장은 이미 하향 추세다. 청약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수요자와 대출을 떠앉고 계약하려는 계약자들이 줄고 있다. 불확실한 집값에 거래(전매)도 안되는 집을 짊어지고 있을 무주택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서울에서는 10점대가 청약에 당첨되기도 했다. 앞으로 청약 경쟁률과 점수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1순위 청약을 받았던 서울의 '홍제 해링턴 플레이스'는 평균 11.1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당시 무난한 완판이 가능하다고 예상했지만 263가구(특별공급 제외) 가운데 174가구가 미계약으로 나왔다. 무려 66%의 미계약률을 나타내 시장에 충격을 줬다. 미계약 이유는 시장의 침체 분위기와 대출의 어려움 등이다. 이 단지는 정부가 무순위 청약에서 예비당첨자 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과열의 예로 든 단지 5군데 중 하나였다. 419가구(특별공급 포함) 모집에 3370명이 접수해 8.0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숫자 보다 숫자의 의미를 더 들여다봐야하는 이유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무순위 청약은 이른바 '온라인 줄서기'로 불린다. 금융결제원의 '아파트투유'를 통해서 미계약·미계약에 대해 예약을 받아서다. 당초 정부는 밤샘 줄서기나 대리줄서기, 추첨의 공정성 시비를 줄이겠다며 지난 2월 무순위 청약을 도입했다. 무순위 청약은 청약을 받기 전에하는 '사전'과 계약기간이 완료되고 시행되는 '사후'가 있다. 시행 초기만 하더라도 '사후' 접수가 많았지만, 미계약이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사전'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무순위 청약은 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모델하우스에 야시장을 방불케하는 혼잡스러운 상황도 없어졌다. 분양 현장에서는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지만, 불과 2개월여 만에 또 제도를 뜯어고치게 됐다. 정부가 문제를 삼은 부분은 '무순위 청약(미계약분 공급) 물량이 과도하게 발생되는 점'과 '현금부자·다주택자가 일부 물량을 사들이는 상황'이다. 이른바 줍줍(줍고 줍는다는 줄임말) 현상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예비당첨자를 전체 공급물량의 80%(기타 40% 이상)까지 선정하고 있다. 이를 앞으로 5배수로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청약자격을 갖춘 실수요자(1·․2순위)가 보다 많은 기회를 갖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20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청약일정을 감안하면 앞으로 나올 단지들이 모두 해당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바람대로 예비 청약자를 늘리면, 현금부자의 '줍줍'은 사라지게 될까? 현장에서의 목소리는 '아니올시다'다. 이번에 내놓은 청약제도 개편에서 정부는 '물량 개수'를 제한하겠다고 나섰지만 '왜 물량이 남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어서다. 정부는 숫자 조정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의견이다. 5배수가 된 배경은 간단하다. 무순위 청약제도 도입 이후 진행된 5곳의 평균 청약경쟁률이 5.2대 1로 공급물량 대비 5배의 적정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해서란다.
국토교통부는 "예비당첨자가 대폭 확대되면, 최초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할 경우 당첨되지 못한 1·․2순위 내 후순위 신청자가 계약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며 "계약률도 높아지고 무순위 청약 물량도 최소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여기서 들여다봐야할 점이 '계약을 포기할 경우'다. 무주택자가 열심히 점수를 쌓아서 청약을 하고 심지어 당첨이 됐다. 가족들의 축하 속에 계약을 하려는데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부적격'과 '대출'이다.
그동안 이와 관련된 기사를 쓸 때마다 독자들의 부정적 반응들이 있었다. '부적격인걸 왜 몰라', '돈이 없으면 청약을 하지 말아야지', '대출 안되는 걸 어떻게 본인이 몰라' 등의 반응들이 있었다. 하지만 계약현장을 막상 가보면 안타까운 사연들이 한둘이 아니다. 몰랐던 가족의 빚이 있거나 소득산정에서 미끄러지는 경우, 집안의 사정으로 부모님을 다른 곳에 잠시 모셨다가 점수가 달라지는 경우 등이다. 물론 이러한 사정을 다 들어주자는 게 아니다. 복잡한 사정들을 차치하더라도 몇 십년간 무주택으로 살았을 당첨자들의 사정은 녹록치 않다. 집도 없이 전세 계약이 돌아올 때마다 맘을 졸였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집을 마련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 현실이었다. 그러다가 이제 무주택자에게 기회가 왔다고 해서 청약을 했더니 계약을 할 수 없단다. 청약통장 하나 간신히 유지하면서 무주택자들이 처음으로 집을 마련하기에 '대출'의 사다리는 부족하다.
현장 관계자는 "집을 사본 분들은 자금사정도 잘 파악하고 있지만, 무주택 분들은 처음이다보니 뜻하지 않게 계약이 안되는 조건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대출길이 막히다보니 당첨이 되어도 계약을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속출한다는 얘기다. 현재의 대출조건에 있어서 현금부자들에게 남은 집이 돌아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상황이다.
또 한가지 정부가 간과하는 게 있다. 바로 무순위 청약의 신청자격이다. 지난 2월 발표된 무순위 청약자격 세부 내용에 따르면, 무순위 청약에는 '공급질서 교란자'가 참여할 수 있다. 공급질서 교란자는 주택법이 정하는 증서 또는 지위를 양도·양수하거나 이를 알선한 자들이다. 쉽게 말해 분양권 불법전매나 조합원 지위 불법양도, 이면계약 등을 한 자들이다.
부자들이 줍줍하는 건 막겠다면서 자격에는 버젓이 불법을 한 자들에게는 줍줍이 가능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다. 유주택자도 청약이 가능하고 당첨자 관리도 하지 않는다. 향후 다른 주택 청약시에 제한도 받지 않는다. 부자들의 줍줍이 싫다면 유주택자 청약을 제한하고, 무분별한 줍줍을 막겠다면 당첨자를 관리하면 된다. 기본적인 자격에 있어서 과열이 될 수 있는 온갖 자격을 넣어놨다. 그러구선 무순위 청약 과열의 원인을 '유주택자와 부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부동산 청약 시장은 이미 하향 추세다. 청약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수요자와 대출을 떠앉고 계약하려는 계약자들이 줄고 있다. 불확실한 집값에 거래(전매)도 안되는 집을 짊어지고 있을 무주택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서울에서는 10점대가 청약에 당첨되기도 했다. 앞으로 청약 경쟁률과 점수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1순위 청약을 받았던 서울의 '홍제 해링턴 플레이스'는 평균 11.1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당시 무난한 완판이 가능하다고 예상했지만 263가구(특별공급 제외) 가운데 174가구가 미계약으로 나왔다. 무려 66%의 미계약률을 나타내 시장에 충격을 줬다. 미계약 이유는 시장의 침체 분위기와 대출의 어려움 등이다. 이 단지는 정부가 무순위 청약에서 예비당첨자 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과열의 예로 든 단지 5군데 중 하나였다. 419가구(특별공급 포함) 모집에 3370명이 접수해 8.0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숫자 보다 숫자의 의미를 더 들여다봐야하는 이유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