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난달 선보인 경기 김포한강신도시 내 자족시설용지 5개 필지(13만465㎡)는 모두 유찰됐다. 올 3월에 이어 두 번째로 전 필지가 미분양됐다. 할 수 없이 LH는 이달 초 공개입찰에서 수의계약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떤 기업도 매수 의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가 3기 신도시에 산본신도시의 1.2배 규모 자족시설용지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나오고 있다. 3기 신도시의 벤치마킹 모델인 판교테크노밸리. /한경DB
정부가 3기 신도시에 산본신도시의 1.2배 규모 자족시설용지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나오고 있다. 3기 신도시의 벤치마킹 모델인 판교테크노밸리. /한경DB
수도권 곳곳에 첨단기업 유치를 위한 테크노밸리(또는 대규모 자족시설용지)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3기 신도시를 통해 525만㎡에 달하는 자족시설용지를 또 공급하기로 하면서 ‘과잉공급’ 우려가 커지고 있다. 3기 신도시 자족시설용지는 1기 신도시인 산본신도시(419만㎡)의 1.2배에 달하는 규모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판교테크노밸리처럼 서울에 있는 첨단기업을 유치하려면 편리한 교통망과 생활기반시설을 갖춰야 한다”며 “서울과 가까운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규모로 미분양되면서 LH 또는 지방공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수요 없는데…'산본신도시급' 테크노밸리 또 공급한다는 정부
“너도나도 제2의 판교 될 것”

12일 국토교통부와 경기도에 따르면 3기 신도시 조성을 통해 경기도에 총 525만㎡ 규모 자족시설용지가 들어선다. 135만㎡를 조성하는 고양 창릉(신도시 용지의 40%)과 인천 계양(90만㎡·49%)이 가장 높은 비율의 자족시설용지를 조성한다. 부천 대장(68만㎡)과 남양주 왕숙(140만㎡), 하남 교산(92만㎡) 등도 2기 신도시보다 넓은 면적의 자족용지를 확보했다. 정부는 이들 용지에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과 가격 인센티브를 제공해 3기 신도시를 자족신도시로 조성할 계획이다. 2기 신도시 중 하나인 판교신도시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판교신도시는 판교테크노밸리에 힘입어 명실상부한 자족도시로 자리잡았다.

3기 신도시들이 자족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비슷한 콘셉트의 자족시설용지가 너무 많다. 당장 2기 신도시 열 곳이 경쟁상대다. 판교를 포함해 동탄 김포한강 운정 광교 옥정 위례 고덕 검단 등 열 곳에서 총 428만3000㎡ 규모의 자족시설용지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와 별도로 경기도가 7곳(판교2·3 광명 일산 구리 양주 등)에서 대규모 테크노밸리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20여개, 1460만㎡ 규모의 ‘일자리 허브’가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초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사업까지 합하면 자족시설용지는 더 늘어난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도시첨단산업단지 등 산업육성 거점을 포함한 자족용지는 경기에만 2015년 기준으로 800만㎡(56개 지구)에 달한다.

“소수만 기업 유치 성공할 것”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조영광 대우건설 연구원은 “부천 대장 등 일부 신도시의 자족시설용지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며 “2기 신도시 자족시설용지가 대거 미분양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해 신도시별 적정 자족기능용지 비율을 따져봤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여의도 등 서울 주요 오피스 밀집지역도 10% 안팎의 높은 공실률에 시달리고 있다”며 “기업 수요가 뻔한 상황에서 이처럼 대규모로 공급하면 유치경쟁이 과열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앞서 발표된 2기 신도시 및 테크노밸리와 비교해 이렇다 할 차별화 포인트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3기 신도시는 용지의 절반가량에 자족기능을 위한 벤처기업시설, 소프트웨어진흥시설, 도시형공장 등을 넣을 예정이다. 남양주에는 도시첨단산단 기업지원허브가, 하남 신도시에도 기업지원허브 청년창업주택 등이 들어선다. 인천 계양 신도시엔 스타트업캠퍼스 창업지원주택 등을 조성한다. 부천 대장엔 기업 이주를 지원하는 원스톱 시스템을 도입해 지능형 로봇·첨단소재·항공·드론 등 신사업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첨단 기업, 4차 산업 스타트업 등 유치하겠다는 콘셉트가 중복된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신도시 자족시설용지가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판교는 황금노선으로 불리는 신분당선을 통한 강남 접근성, 분당·수지와 같은 배후주거지, 원가 수준의 택지공급 등에 힘입어 성공했다”며 “값싼 임차료에 매력을 느끼는 스타트업이라도 서울과의 접근성과 인근에 기업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중요하게 따진다”고 지적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용지 확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특화 가능한 지역의 아이템 등 차별화된 자족기능을 각각 구현하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자족시설용지

신도시 또는 택지개발지구의 자족기능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용지. 베드타운화된 1기 신도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995년 도입됐다. 도시형공장 벤처기업집적시설 소프트웨어진흥시설 연구소 일반업무시설(오피스 제외) 등을 설치할 수 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