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경제학 이론은 ‘세수를 과도하게 넘어서는 정부 지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지 균형을 강조해왔다. 국가 채무가 일정한 선을 넘으면 성장이 느려지고 위기를 맞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좌파 성향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은 “정부는 빚 걱정 말고 화폐를 찍어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은 비주류 경제이론인 ‘현대통화이론(MMT)’이 그 근거다. MMT는 정부가 돈을 많이 찍어내 인프라·복지 등에 쓰면 그만큼 돈이 많이 풀려 민간 경제가 살아난다고 보는 이론이다.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하원의원(민주당)은 MMT를 토대로 지난 2월 ‘그린 뉴딜’이라는 정책을 제안했다. 미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그린 뉴딜’은 1930년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해 시행한 뉴딜 정책을 벤치마킹해 기후변화 해결과 부의 불균형 극복을 위해 친환경 녹색산업에 돈을 쏟아부어 모든 미국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재원은 미 정부가 찍어내는 돈이다.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민주당)의 고문인 스테퍼니 켈턴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교수가 이 이론을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다. 그는 “정부 부채란 대차대조표상에 나타나는 수치일 뿐이며 화폐를 직접 찍어낼 수 있는 정부는 부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특히 부채가 자국 통화로 발행된 기축통화국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MMT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30%가 넘는 일본 경제가 탄탄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미국은 아직도 8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경제인은 이를 ‘터무니없는’ 이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지난 2월 “기축통화국에서는 재정적자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MMT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앨런 아우어바크 버클리대 교수는 “MMT 이론은 그냥 어리석다”며 “예기치 않았거나 원치 않는 인플레이션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정부 적자는 심각한 문제라고 믿는다”며 “MMT는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MMT가 일본에서도 확산되자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3월 “체계화된 이론이 아니다”며 “재정적자와 부채 잔액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