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안일한 현실인식에 갇혀버린 규제 개혁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지난 8일 ‘규제 혁신의 성과와 과제’ 콘퍼런스에서 2년간의 규제혁신 성과를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그런데 국민 대부분은 “과연 그런가” 하고 질문하게 된다.

국무조정실의 규제조정실장은 한국의 규제 시스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규제 정책 기준 3~6위라는 평가가 세계경제포럼(WEF)의 규제 순위 95위(2017년 기준)라는 평가보다 객관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OECD 규제 정책은 정부의 입법 규제 입안 과정에 대한 1000개 항목 평가이고 세계경제포럼은 기업인 100명의 주관적인 답변이라는 이유에서다. 규제는 입안 과정이 아니라 기업 활동에 미치는 결과가 훨씬 중요하다. 공유경제 규제로 전 세계 스타트업의 70%는 한국에서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규제의 결과다.

OECD는 한국의 시장규제 순위를 최하위권으로 평가했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입안 과정도 실상을 보면 달라진다. 법령 근거의 10배가 넘는 규제가 행정부 내 고시와 금융감독원 같은 준정부기관의 내부 규준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의 인터넷을 추락시킨 공인인증서와 클라우드 규제가 대표적인 행정 편의적 법령 미근거 규제들이다. 이런 내용이 OECD에 통보되면 한국의 규제 입안 과정 평가도 하위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규제 과정의 투명성 부족이다.

정부는 출범 100일 된 한국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금융권에만 한정돼 있는 영국의 규제 샌드박스와 비교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찬양했다. 영국, 미국, 중국은 원칙적으로 하지 말라고 명시되지 않은 일은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 국가다. 법으로 허용된 일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 국가인 한국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데 우리가 더 낫다고 용감하게 주장한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시작부터 공무원들의 소극행정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1호 신청자는 심의를 거부했고, 심의절차 과정을 공개하지 않아 비슷한 사업모델의 반복심사가 거듭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징계와 인센티브를 통한 적극 행정을 유도하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있다. 당장 규제 샌드박스의 심의 과정에 대한 정보 공개를 지면을 빌려 공개 청구하고자 한다. 현재의 규제 샌드박스는 부분적 네거티브 제도를 부처가 반대하면 수용하지 않는 매우 포지티브한 운영에 불과하다는 것이 산업계의 의견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은 기술보다 데이터 규제 개혁에 있다. 정부는 작년 8월 개인정보와 데이터의 규제 개혁을 이룩했다는 발표를 자랑스럽게 했다. 작년 8월에는 대통령이 직접 ‘4차 산업혁명을 위한 데이터 고속도로’ 선언을 했다. 그러나 작년 10월 제출된 개인정보보호법과 클라우드 진흥법의 양대 데이터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를 통한 현실과 가상의 융합이므로 두 법안은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실질적인 출발점이다. 정부의 총괄적인 규제 대응전략 및 현황 파악 능력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이번 4차산업혁명위원회 개최 콘퍼런스에서 확인된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안일한 현실인식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선도기업과 글로벌 유니콘의 70%가 불법이라는 통계에도 이를 위기로 인식하는 담당자는 없어 보였다. 세계 최고라는 규제정보포털은 질적 규제 향상이란 명목하에 2015년부터 규제총괄 수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규제 민원의 축적 데이터도 부재하다. 규제를 찾아가는 규제 맵과 내비게이터는 부실하고 미국의 ‘E레귤레이션(E-Regulation)’과 비교해 이용자 친화성은 너무 떨어진다. 실질적 규제 강국을 선언하려면 ‘액티브X’를 모든 정부 사이트에서 걷어내고 원격의료와 공유차량, 글로벌 지도부터 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