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 주재로 고위 관료들이 모여 경제 현안을 논의했던 서별관회의(거시금융점검회의)가 폐지되고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9인 고위 당·정·청 회의로 대체되면서 부총리의 리더십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부총리와 기획재정부가 청와대와 정치권에 밀려 정책 주도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13일 기재부 등에 따르면 2016년 6월 이후 서별관회의는 중단됐고 문재인 정부는 회의를 사실상 폐지했다. 서별관회의는 외환위기 때 만들어져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때까지 이어져온 비공식 경제 회의다.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중심으로 청와대 경제수석,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이 주요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부총리가 주재하고 경제수석이 청와대 기류 등을 전달하면서 이견을 조정하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서별관회의 폐지 이후엔 국무총리 주재로 당·정·청 고위 관계자 아홉 명이 매주 일요일 총리 공관에서 만찬 회동을 하고 주요 경제 현안을 조율해오고 있다. 행정부에선 국무총리를 비롯해 부총리, 국무조정실장 등 세 명이 참석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당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원회 의장 등 세 명, 청와대에선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대통령 수석비서관 등 세 명이 참석한다. 과거 부총리가 좌장이었던 서별관회의에 비해 기재부의 발언권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익명을 요구한 관료 출신 국회의원은 “경제정책은 경제부처에서 주도하고 청와대와 정치권이 발맞춰가는 게 정상인데 현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며 “운영방식에서조차 부총리의 발언권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기재부 차관 출신인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지금처럼 끌려다니는 기재부를 본 적이 없다”며 “정치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면서 경제관료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기재부와 정치권, 청와대의 기싸움은 예전부터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386(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운동권 출신)’ 실세들과 관료 집단 간 갈등이 치열했다. 이헌재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386 실세들과의 갈등 속에 취임 1년 만에 물러났다. 경제관료와 386 실세들은 1년여간 정책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 정권 중반기 이후엔 경제관료들이 국정의 주도권을 잡는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김대중 정부의 첫 경제팀 진용은 이규성 재경부 장관, 김태동 경제수석, 강봉균 정책기획수석이었다. 이들 세 사람은 서로 주도권 다툼을 벌이며 손발을 맞추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3개월도 안 돼 김태동 수석을 경질하고 강봉균 전 장관을 경제수석에 앉혔다. 이후 경제관료 중심으로 정책 추진체계가 잡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