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협상이 조만간 타결되더라도 양국 분쟁이 또 터질 것이란 진단이 나왔다. 한국경제신문이 13일 서울 중림동 본사에서 연 ‘미·중 분쟁과 한국 통상의 과제’ 토론회에서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단순히 무역 불균형 문제가 아니라 기술 패권을 둘러싼 ‘기 싸움’이어서 머지않아 다시 불거질 것”으로 예상했다.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적기 대응하기 위해선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인 통상교섭본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본부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경제신문은 13일 서울 중림동 본사에서 ‘미·중 무역분쟁과 한국 통상의 과제’를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 장윤종 포스코경영연구원장.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은 13일 서울 중림동 본사에서 ‘미·중 무역분쟁과 한국 통상의 과제’를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 장윤종 포스코경영연구원장.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사회=지난 10일까지 열린 미·중 무역협상이 일단 결렬됐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미국은 중국에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 지식재산권 보호, 외국 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 강요 금지 등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받아들이기엔 굴욕적인 요구다. 중국으로선 내부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주제네바대사)=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11월 재선 도전을 앞두고 있는 게 큰 변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의식해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통상에서만큼은 ‘매파’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경쟁자를 의식해 적당히 타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추가 협상이 열릴 것 같다. 타결 전망은.

▷장윤종 포스코경영연구원장=지난해 3월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됐는데 작년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수지가 악화했다. 올해는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무역수지와 관련한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면 일단 타결될 수는 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3~4주 안에 큰 틀에서 타협이 이뤄질 것 같다. 하지만 머지않아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느냐”고 비판할 것이다. 양국 간 새로운 갈등이 불거질 것이란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대북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유일한 치적으로 대중 견제장치 확보를 내세워야 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일시 타결돼도 미봉책에 그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중국의 6%대 경제성장률 확보를 위한 적당한 타협이 될 뿐이다. 핵심은 중국 정부의 산업보조금 정책과 무역협상 이행 법제화다. 둘 다 단기간 내 해결이 어렵다.

▷최 고문=미·중 분쟁은 단순히 통상 문제가 아니다. 기술 패권의 주도권 싸움이다. 중국이 외국 기업을 상대로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등 불공정 관행을 계속하는 데 대해 미국이 경고한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될 수 없다.

▷사회=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송 연구위원=득보다 실이 큰 건 분명하다. 한국 경제는 지난달 수출, 투자, 소비 등 성장을 이끄는 세 축 모두 부진했다. 미·중 분쟁에 따른 불확실성이 끼친 영향이 상당했다.

▷장 원장=한·중 간 산업 경쟁이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의 공장’이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옮겨갈 것이기 때문이다. 폭스콘 사례에서 보듯 중국의 수출 생산기지가 베트남이나 인도로 이동하면 중국은 우리처럼 고부가가치 위주로 산업을 재편하려고 할 것이다. 한국은 중국이 따라오기 전에 신기술 개발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특히 철강이 문제다. 미국 유럽 등의 제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 갈등으로 중국 공세가 더 거세질 것이다.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최 고문=정치적으로도 커다란 위기 요인이다. 중국이 고립을 피하기 위해 일본과 밀착하려고 시도할 게 분명하다. 중·일 관계가 호전되면 동북아시아 정치에서 ‘코리아 패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사회=국내 금융시장까지 출렁이고 있다. 돌파구가 있다면.

▷장 원장=수출 다각화가 시급하다. 한국은 수출 지역과 품목뿐만 아니라 수출기업 역시 대기업 위주다. 중소·중견기업의 수출품이 주류가 될 수 있도록 수출 기반을 닦아줘야 한다.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사회=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은 다자 간 무역협정 체결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최 고문=한국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어떤 방식이든 경제 자유화를 확대할수록 이익이다. CPTPP는 ‘사실상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가입 시의 효용이 비용보다 훨씬 크다. 중국 앞마당에서 거대한 자유무역 시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 ‘친구’가 별로 없는 한국이 전략적으로 CPTPP 가입국을 활용할 수도 있다.

▷송 연구위원=결국 가야 할 길이다. CPTPP는 농업을 포함해 거의 모든 무역 상품에 대해 100% 관세 철폐를 목표로 하고 있다. 농업계 반발이 클 것이다.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한 만큼 쌀직불금제에서 농가 소득 보전으로 접근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회=통상 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송 연구위원=통상교섭본부부터 세종에서 서울로 옮겨야 한다. 각국 대사관과 자주 소통해야 하는데 지리적 한계가 많다. 차관급인 본부장을 장관급으로 올릴 필요도 있다. 산업부 장관은 통상 쪽에 전문성이 없지 않나. 지금처럼 통상교섭본부 인력이 산업·에너지 등으로 자주 이동하는 것 역시 문제다. 차제에 통상교섭본부를 독립시켜 국무총리실 산하로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교수=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은 기업이다. 정부와 기업이 더 원활하게 소통하는 창구가 마련돼야 한다.

정리=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