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원화가치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간 달러당 1115~1135원의 박스권에서 움직였으나 지난달 하순부터 급격한 상승세로 돌아서더니 거의 매일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어제도 1187원50전까지 올라 2017년 1월 이후 2년4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의 4월 이후 상승률은 4.6%를 넘어 주요국 중 터키, 아르헨티나를 빼면 가장 높다.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두 나라 다음으로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는 대외적으로 그 나라 경제의 총체적 위상과 경쟁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원화가치 급락은 그런 점에서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험신호라고 봐야 한다.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국내 경기 부진, 대북 리스크 재부각, 미·중 무역전쟁, 한·미 금리차이 등이 거론된다.

아마도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원화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이 국내 경기 부진이다. 지난 한 달간 원·달러 환율이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시기가 1분기 성장률(-0.3%)이 발표된 지난달 25일 전후 3일간이었다는 점을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의 총체적인 성적표가 나쁘게 나오니 그에 상응해 원화 값이 급락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은 호조를 보인다. 그러나 수출은 최근 5개월 연속 감소했다. 반도체 수출 부진에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영향이 겹친 탓이다. 가뜩이나 내수 경기가 침체된 와중에 수출마저 환율 상승의 혜택을 받지 못하자 우리 경제 체력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고, 이것이 원화가치를 더욱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리디노미네이션(통화단위 변경)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은 통화단위를 대외적 위상에 걸맞게 바꾸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정작 중요한 것은 통화단위 개편이 아니라 원화의 실질적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 첩경은 경제를 살려내는 것이다.

관(官) 아닌 민간 중심으로 경제가 활기를 되찾고 기업 수익과 고용, 소득이 늘어나면 원화가치는 저절로 높아진다. 경제가 고도성장을 거듭한다면 1971년 이전처럼 엔화보다 고평가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반면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진다면 원화 가치의 추가 추락은 불가피하다. 원화의 움직임은 우리 경제의 바로미터다. 정부가 놓쳐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