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이자 향촌 자치 운영기구였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
문화재청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한국이 서원 9곳을 묶어 신청한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했다고 14일 밝혔다. ICOMOS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 자문기구로, 등재 권고를 받은 유산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된다. 이에 따라 ‘한국의 서원’은 내달 30일부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등재될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의 서원’이 등재되면 한국은 총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한다.

‘한국의 서원’은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9개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이들 서원은 2009년까지 모두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됐으며, 훼손되지 않고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원은 공립학교인 향교(鄕校)와 달리 향촌사회에서 사림이 자체적으로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이자 향촌 자치운영 기구였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1543년(중종 38년) 고려말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백운동서원이 효시다. 서원은 제사와 강학(講學)은 물론 향촌민의 교화와 질서·풍속 유지 기능까지 도맡았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향촌 방어를 위한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것도 서원이 구심점 역할을 한 덕분이다.

하지만 사림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서원이 폐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원의 학연이 붕당정치의 온상이 됐고, 서원 설립이 남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액서원이 급증하면서 국가의 재정 부담이 커졌고, 향촌 사회에서의 온갖 폐단도 늘어났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8세기 중엽 1000여 개에 달했던 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서원 철폐령으로 전국에 47개만 남기고 모두 훼철됐다.

서원은 각 지역 사림이 유교의 선현을 기리기 위해 세웠기에 서원마다 유래와 특징이 있다.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건의에 따라 명종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현판과 서적을 하사하면서 백운동서원이 이름을 바꿨다.

도산서원은 퇴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며 1574년(선조 7년)에 지어졌으며,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당과 퇴계 사후 건립된 도산서원으로 구성돼 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이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인데, 서애가 타계하자 지방 유림들이 서애의 위패를 봉안하고 병산서원으로 개칭했다.

도동서원은 이황이 ‘근세 도학의 으뜸(近世道學之宗·근세도학지종)’이라고 칭송했던 한훤당 김굉필의 제자들이 세웠고,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곳이다. 남계서원은 정여창, 무성서원은 최치원과 신잠, 필암서원은 김인후, 돈암서원은 김장생을 중심으로 배향한다.

‘한국의 서원’은 재수 끝에 세계유산에 등재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각별하다. 2016년 4월 ICOMOS는 서원 주변 경관이 문화재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문화재청이 낸 등재신청서에 대해 ‘반려’ 판정을 내렸다. 각 서원의 독창성과 연속유산으로서의 연계성에 대한 설명도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신청을 자진 철회한 뒤 미비한 부분을 철저히 보완해 지난해 1월 등재신청서를 새로 냈고, 마침내 합격점을 받았다.

심사 결과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보편화됐던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이자 성리학의 지역적 전파에 이바지한 교육기관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인정받았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다만 ICOMOS는 추가 이행 과제로 “9개 서원의 통합 보존관리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문화재청은 이를 위해 관련 지방자치단체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