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직면한 재정 문제에 대학 스스로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돈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국내 대학들의 모습에 서울의 한 경영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감소, 입학금 폐지 등으로 인해 ‘대학 재정에 한계가 왔다’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부 보조금만 바라볼 뿐 대학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학들과 달리 하버드, 스탠퍼드 등 해외 유수 대학들은 막대한 규모의 기부금을 활용한 투자수익으로 매년 1조원 이상을 연구비 등으로 쓰고 있다.


해외에선 기금 운용 수익만 수조원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 기금을 보유한 미국 하버드대의 기금 운용액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392억달러(약 45조원)에 달했다. 기금을 운용하는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HMC)는 지난해 10%의 수익률을 올렸다. 2017년에도 8.1%의 수익률을 올려 웬만한 펀드 수익률을 앞섰다.

매년 조단위 수익을 내는 HMC는 지난해 18억달러(약 2조원)를 하버드대에 운영예산으로 지급했다. 이는 지난해 하버드대 전체 운영비용 50억달러의 36%에 해당한다. 하버드대는 2018년도 회계 보고서를 통해 “기부금 운용 수익은 하버드대 총자산이 440억달러에서 470억달러로 7%나 늘어날 수 있었던 주요인으로서 대학 교육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스탠퍼드대도 대규모 기부금 투자 수익을 통해 매년 1조원 이상의 대학 운영비를 기금에서 충당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280억7000만달러(약 32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스탠퍼드대 산하 스탠퍼드매니지먼트컴퍼니(SMC)는 23명의 투자팀과 52명의 지원 인력으로 지난해 11.3%의 기금 운용 수익률을 올렸다. SMC가 처음 설립된 1991년부터 따지면 연평균 수익률은 11.7%에 달한다. 막대한 수익률을 바탕으로 SMC는 지난해 12억달러(약 1조3700억원)를 대학 운영비로 지출했다. 이는 지난해 스탠퍼드대 전체 운영비용의 2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 교수는 “국내 대학은 너도나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지만 막대한 기금 수익을 연구비에 쏟아붓는 하버드대, 스탠퍼드대와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금 수익서 2兆 배당받는 美하버드…국내대학은 등록금만 바라봐
국내 대학 기금 운용은 ‘걸음마’ 수준

기금 운용을 통해 자체적으로 재정을 확충하는 해외 대학들과 달리 국내 대학들의 기금 운용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교육부와 함께 전국 340개 대학을 대상으로 기금·자산 운용 자료를 요청한 결과 자료를 제출한 53개 대학 중 기금운용 관련 조직 및 투자지침서(IPS)가 마련되지 않은 대학이 22.6%(12곳)에 달했다. 정기예금 외엔 자금을 투자하는 곳이 없다보니 운용 자체가 불필요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금 규모 자체도 해외 대학에 비해 턱없이 적다. 2017년 기준 전국 사립대 적립금을 모두 합친 금액은 7조9335억원에 불과했다. 미국 하버드대 기금 운용액(약 45조원)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기금을 조성할 기부금 모금액도 해외 대학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하버드대는 2017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년 동안 14억달러(약 1조6340억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국내에선 2017년 기준 172개 4년제 일반 사립대의 기부액을 모두 합쳐도 4401억원에 불과했다.

“투자 수익률 높일 방법 찾아야”

대학 기금운용위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정기예금 등 원금 보장성 상품에 주로 투자하는 극도의 ‘안정성’ 추구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증권 등 변동성이 있는 자산에 투자했던 대학들의 실적이 부진해지면서 다른 대학들도 투자를 보수화하는 추세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17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일반대학 법인 42곳, 전문대학 법인 20곳의 증권 투자 평균 수익률은 각각 0.8%, -9.7%에 그쳤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학 스스로가 전문성을 갖출 수 없다면 일임투자 비율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거의 모든 기금을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있다”며 “등록금 규제로 대학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금 수익을 높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의진/황정환/박종관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