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에서는 ‘닥터둠(Dr. Doom)’으로 불리는 비관론자 누리에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투자한 앱(응용프로그램)이 화제가 됐다. 술 관련 앱이었기 때문이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내고 등록된 술집 아무 곳이나 가서 두 잔의 칵테일을 마실 수 있었다. 후치(Hooch)였다. 이 서비스는 일본으로 수출도 됐다.
딩동~ 와인·수제맥주 왔어요
국내에서도 술 큐레이션과 정기배송 시장이 열리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과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회식 문화가 시들해지고, ‘혼술(혼자 마시는 술)’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가 확산된 영향이다. “수백 가지 술 가운데 입맛에 맞는 걸 골라 집으로 보내드립니다”가 이들의 슬로건이다.

딩동~ 와인·수제맥주 왔어요
입맛 맞는 와인도 배달

‘퍼플독’은 맞춤형 와인 정기배송 서비스 시장을 개척했다. 소믈리에 등 와인 전문가들이 취향에 맞는 와인을 선별해 보내준다.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등 와인 종류는 물론 포도 품종, 산지와 와인의 산미 당도 보디감 그리고 타닌(떫은맛)까지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맞춰준다. 가격대는 월 3만9000원부터 100만원까지 다양하다. 퍼플독 관계자는 “매월 상대방에게 선물로 와인을 보내주는 선물 박스 제품, 기업 간(B2B) 상품도 출시했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롯데몰 수지점에 오프라인 매장도 열 계획이다.

벨루가 수제맥주
벨루가 수제맥주
‘벨루가’는 2017년 국내 최초로 수제맥주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원하는 곳으로 벨루가가 선별한 수제맥주를 보내준다. 호주에서 들여온 스파클링 에일, 독일에서 수입한 아벤티누스 맥주 등 세계 곳곳의 희귀한 수제맥주를 벨루가 전문가들이 선택해 보내준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2014년 200억원에서 지난해 63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며 “다양한 맛과 개성이 있는 수제맥주를 손쉽게 마시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맥주 큐레이션 서비스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규제를 피하는 해법 찾아

퍼플독과 벨루가 모두 규제의 벽을 피해 이 서비스를 하고 있다. 주세법은 술을 인터넷이나 전화 등을 통해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클릭 한 번으로 와인을 살 수 없는 이유다. 퍼플독은 ‘대면 결제’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규제를 넘어섰다. 소비자들이 퍼플독 사무실에 가거나 직원들이 직접 소비자를 방문해 결제를 진행한다. 제주에서 주문해도 직접 찾아간다. 퍼플독은 이 솔루션을 찾은 후 지난해 12월에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와디즈에서 7300만원가량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술 정기배송 시장에서 어려움을 가장 많이 겪은 주류는 맥주다. 맥주는 연령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즐겨 찾는다.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술만은 배달할 수 없다. 벨루가는 음식과 술을 함께 파는 방식으로 인터넷 주문을 소화하고 있다.

술담화 전통주
술담화 전통주
전통주 추천해 주는 스타트업

이런 주세법에 예외가 있다. 전통주는 예외적으로 통신판매 허가를 받은 술이다. 정부는 2017년 7월 전통주를 육성하기 위해 규제를 풀었다. 규제를 풀자 새로운 업체가 등장했다. ‘술담화’는 지난 1월 등장한 국내 최초의 전통주 정기배송 서비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매달 찾아오는 인생술”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계절별·기념일별로 어울리는 전통주를 골라 집으로 보내준다. 매월 한 번씩 자체적으로 선정한 전통주 두 병을 설명 카드와 함께 배송한다.

술담화를 운영하는 이재욱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국내 전통주 시장을 눈여겨봤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전통주는 2000여 개. 이 대표는 수많은 전통주 가운데 흥미로운 스토리가 담긴 술을 골라 소개한다. 예를 들어 황금색을 띤 ‘천비향’은 경기 평택에서만 나는 슈퍼오닝 햅쌀로 빚은 술로, 쑥과 무궁화꽃을 넣어 향을 더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