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서 전면 무죄선고로 재기발판 마련…이어질 상급심 주목
16일 1심 재판부의 선고로 하나의 매듭을 지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직권남용·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사건의 발단은 얄궂게도 이 지사가 대권 잠룡의 반열에 오르게 된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비롯됐다. 당시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선 이 지사는 56.4%의 득표율 기록하며 35.5%에 그친 새누리당 남경필 전 지사에게 낙승, 성남시장에서 경기지사로 '체급'을 올리며 대권 도전의 튼튼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그는 앞서 치러진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른바 '3철(전해철·이호철·양정철)' 중 한 명으로 조직력에서 앞선다는 전해철 의원을 큰 격차로 따돌리며 대세론을 입증하기도 했다.
거칠 것 없던 이 지사의 질주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동시다발로 진행되면서부터 삐끗대기 시작했다.
바른미래당 성남적폐진상특위는 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지난해 6월 10일 이 지사가 성남시장 권한을 남용해 친형(고 이재선 씨)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려 하고 이를 선거 과정에서 부인한 직권남용 및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이어 자유한국당 성남수정 당협위원장과 한 시민이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검사 사칭'과 관련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추가 고발, 이 지사는 당선 직후부터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10월 12일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받은 이 지사는 같은 달 29일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며 "형님 강제입원을 형수님이 하신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 지사는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도 부인했지만, 경찰은 지난해 11월 4일 이들 사건과 관련해 기소의견으로 이 지사를 검찰에 송치했다. 당시 이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찰이 '대면 진찰 거부하는 환자(형)에 대한 강제대면 진찰 절차 진행'을 '대면 진찰 없이 대면 진찰을 시도했다'는 무지몽매한 순환 논리로 '직권남용죄'라 주장하고 그에 맞춰 사건을 조작했다"는 글을 올리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며칠 뒤 경찰이 이른바 '혜경궁 김씨'로 세간에 알려진 '정의를 위하여' 트위터 계정을 소유하며 이 계정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은 아내 김혜경 씨 역시 기소의견으로 송치하자 "제 아내가 아니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비슷한 것들을 몇 가지 끌어모아 제 아내로 단정했다.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택했다"며 수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이처럼 줄곧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과 아내 김 씨에 대한 수사에 반발했지만, 검찰도 경찰과 비슷한 수사 결과를 내놨다.
검찰은 공직선거법 공소시효를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11일 이 지사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 그를 재판에 넘겼다.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아내 김 씨가 불기소된 것이 이 지사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 지사 재판은 올해 1월 10일부터 검찰이 직권남용죄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에 대해 벌금 600만원을 구형한 지난달 25일까지 106일 동안 무려 20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검찰과 이 지사 측이 사안마다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증인도 55명이나 법정에 불려 나왔다.
특히 양측이 각자 유·무죄의 '스모킹건'으로 판단한 증거자료를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검찰은 전직 분당구보건소 보건행정과장이 2012년 사건 당시 작성한 일지 형식의 기록문서를 내놓아 이 지사가 위법한 지시를 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반면 이 지사는 친형 고 이재선 씨가 사건 발생 이전인 2002년 이미 조증약을 복용했다며 조증약을 언급하는 이 씨와 지인 간의 전화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그러나 기록문서에 대해 이 지사는 날짜 조작 가능성을, 녹취록에 대해 검찰은 유도 질문 가능성을 문제 삼는 등 상대방의 증거자료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으로 갈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양측의 법정 공방은 이 지사가 기소된 지 157일째이자 도지사 당선 이후 1년 가까이 지난 이날 1심 재판부의 선고로 제1막을 내렸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최창훈)는 이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출직 공무원은 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되는데 이번 1심 선고로 이 지사는 이러한 위기에서 일단 벗어났다.
더욱이 법원이 이 지사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이 지사에게는 재기의 발판이 확실히 마련됐다.
실제로 이 지사는 선고 직후 "사법부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 재판부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며 "먼 길 함께 해준 동지·지지자와 앞으로도 손잡고 큰길을 가겠다"고 밝혀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다만, 검찰의 항소가 확실시되는 상황이어서 상급심이 모두 마무리될 때까지 이 지사가 완전히 마음을 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소년공 출신 흙수저'의 성공신화를 쓰며 대권 잠룡이 된 이 지사가 이어질 상급심에서도 자신을 향한 비수를 피하고 비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