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우리의 기억은 모두 '팩트'일까?
벚꽃이 한창인 무렵,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즐거운 귀갓길이었지만, 두 분 사이에 작은 다툼이 있었다. 꽃놀이에 대한 기억이 문제였다. 마지막 꽃놀이는 언제 갔었느냐, 그때 입고 간 옷 색깔이 무엇이었느냐, 하루 자고 왔느냐, 당일치기였느냐 등. 누구의 기억이 옳은가로 옥신각신하셨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 분의 기억이 모두 정확하다면, 정말이지 다른 날 다른 사람과 다녀오셨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기억은 팩트와 다를 수 있다. 기억은 늘 기억하는 사람에 의해 편집되기 때문이다. 불과 몇 해 전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함께 진해에 다녀오셨음에도, ‘아버지 버전’과 ‘어머니 버전’으로 나뉜 것이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일이기에 두 분의 다툼은 그런대로 진화됐지만 ‘내가 옳다’는 고집은 몇 주가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이런 문제는 상담 중에도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사사건건 무시당한 이유로 남자에게 적대감을 느끼며 사는 한 여대생이 있었다. 자존감이 바닥이라 늘 우울하고, 사소한 자극에도 공격적이라 대인관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치료를 위해 부모 상담이 절실해 가족 상담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전혀 다르게 기억 하고 있었다. 딸아이의 잔인했던 기억에 진심으로 놀라고 당황해했다. 자녀에게 냉정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인격적으로 무시하거나 업신여긴 적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지낸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기억이 많다. 아이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상담에서 기억은 제일 중요한 치료의 자원이다. 어쩌면 상담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렇게 괴로운가’의 원인을 과거를 통해 알아내고, 분석을 통해 현재를 치유하는 과정이 상담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면 큰 문제가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좀 복잡해지지만 상담에서의 기억은 기억이라 중요하다. 옳고 그름은 아무 상관이 없다. 기억이 팩트이건 조작이건 말이다. 얼마나 왜곡되고 편집됐는지, 진실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보다 그렇게 기억되고 있는 것 자체가 좀 더 진지하게 다뤄야 할 상담의 중심이다.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가 핵심이다. 심리적으로 가치 있는 조작된 기억이란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대생의 사례라면, 그녀가 아버지와 부정적인 관계였던 점은 팩트다. 부모도 인정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피해의식을 느끼게 되고, 정말 무시하지 않더라도 그런 기미만 보여도 관계가 끝장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원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그 끝에 냉정했던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용서할 수 없는 폭군으로 기억하도록 무의식이 작동한다. ‘아! 아빠 때문에 내가 이렇구나!’ 그러니, 그녀는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품게 되고, 그럼으로써 의식과 자아는 평온을 찾는다. 이런 그녀의 결론이 핑계는 아니다. 의식적인 거짓말이라면 핑계라고 할 수 있지만 무의식적인 흐름이다. 부정적인 아버지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소 복잡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핵심은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과장되거나 축소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기억의 왜곡으로 인한 사건이 한둘이 아니다. 반복 재생하는 듯한 청문회 중계를 보면 기억이 없다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또 정치인의 섹스스캔들의 경우에도 피해자라고 하는 사람과 가해자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이런 뉴스를 자주 접해서인지, 기억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기 십상이다.

이해는 된다.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기억을 바꾸는 것은 거짓말이고 변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공인이라면 무의식적인 기억의 왜곡조차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그냥 우리 이웃들의 잘못된 기억이라면 웃어 넘겨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를 위한 편집이라면 정신건강에 결코 해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행복은 추억으로 만들어지고, 추억은 기억하는 사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