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쉬어가도록 나를 비워내는 게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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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대가' 박서보 화백
28년만의 대규모 회고전
국립현대서울관 129점 걸어
28년만의 대규모 회고전
국립현대서울관 129점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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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미술 대표 화가인 박서보 화백(88·사진)은 16일 개인 회고전을 앞두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18일부터 오는 9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91년 이후 28년 만에 국내에서 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초기작품인 ‘원형질’ ‘유전질’ 시리즈부터 올해 그린 대형 묘법 신작 두 점까지 박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작품 총 129점을 선보인다.
그는 “‘묘법’이란 새로운 화법은 일상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털어놨다. “동양의 무소유나 무위자연과 같은 사상을 공부하면서도 줄곧 나를 비워내기 위한 미적 방법론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 세 살배기 아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공책에 글씨를 지우고 다시 쓰는 것을 반복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결국엔 연필로 막 그어버리더군요. ‘이거구나’ 싶었죠.”
묘법 연작은 기존 회화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오히려 지운 것에 가까운 작품”이라며 “캔버스에 방한지를 붙여 그은 것을 보면서 비로소 이게 한국적인 작품, 나다운 작품이란 걸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박 화백은 추상화든 뭐든 시대를 담지 못하는 미술은 가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예술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그저 체제나 교양, 철학을 담는 게 아니에요.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식을 줄 모르는 작가의 열정으로 담아내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갖는 게 미술의 역할이죠.”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