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공정위가 산업을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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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비핵심 멋대로 갈라놓고
비핵심 계열사 팔라는 공정위
4차 산업혁명 현장에 가보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비핵심 계열사 팔라는 공정위
4차 산업혁명 현장에 가보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서울 여의도 면적의 2.4배에 달하는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스마트 조선소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실제 조선소’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능화된 ‘디지털 조선소’가 쌍둥이처럼 돌아가는 시스템은 그 자체로 장관일 것이다. 정보기술(IT) 계열사가 없는 현대중공업이 이 프로젝트를 외부에 발주하면 스마트 조선소가 뚝딱 탄생할 수 있을까?
조선소 현장에 축적된 노하우와 운영 경험에서부터 수직적 공급사슬로 이어진 대기업과 협력사 간 데이터 통합, 설계·구매·생산·물류 등 제조 전 과정에 걸친 실시간 데이터 연결, 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에 기반한 플랫폼 구축까지 통째로 공급해 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노조 동참을 끌어내는 건 또 다른 과제다. 현대중공업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어쩌면 한국형 스마트팩토리 모델은 이 과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에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SI(시스템통합) 등 비핵심(비주력) 계열사를 팔거나 계열분리하라”고 한 데 이어, 최근 공정위가 SI 실태조사에 착수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파괴적 혁신’이 일상이 된 마당에 핵심·비핵심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것부터 의문이다.
굳이 구분을 하려면 설득력 있는 잣대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특히 SI가 핵심 사업과 관계없다고 단정한 건 수긍하기 어렵다. 공정위가 비핵심으로 지목한 SI는 과거처럼 대기업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부대가 아니다. 현장에 가보면 IoT·클라우드·빅데이터·AI·블록체인·스마트팩토리·스마트물류 등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제조기업이 잇따라 데이터 기업을 선언할 정도로 핵심 사업의 ‘디지털 쌍둥이’ 경쟁력이 IT 계열사라면, 그 또한 핵심으로 보는 게 상식일 것이다. 당연히 법률상 일감 몰아주기의 예외 조건인 ‘긴급성’ ‘보안성’ ‘효율성’ 등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IT 계열사를 처분하라고 압박하는 건, 산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공정위는 “대기업 SI 실태조사는 실태조사일 뿐”이란 해명을 내놨지만, 문제의 핵심은 오로지 경영권 승계라는 기업 지배구조 프레임에 사로잡혀 내부거래를 ‘악(惡)’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리 되면 4차 산업혁명이 역풍을 맞을 위험성이 커진다. 일부 대기업은 SI 계열사를 처분하기 시작했다.
공정위의 산업 몰이해에 따른 부작용은 SI산업 위축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대기업에 벤처기업들을 인수해 달라며 일정기간 계열사 편입 유예라는 당근을 던져왔지만 효과가 없었다. 대기업 규제를 틀어쥔 공정위가 핵심·비핵심을 멋대로 나누고, 내부거래를 벌주겠다며 비핵심을 처분하라는 판국이니 당연한 결과다. 신산업 투자를 확대할 수도 계열사를 늘릴 수도 없으면, 대기업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지분 투자도 인수합병(M&A)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요즘 공정위가 ‘갑질’을 빌미 삼아 지식·아이디어·기술·브랜드·영업비밀 등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뒤흔들고 있는 모습도 위험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이상한 건 어느 부처 장관도 공정위의 무모한 질주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장관은 몰라도 경제활력부터 되찾겠다던 경제부총리, 4차 산업혁명 주무부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산업 주무부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말이 없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관들이 잘하고 있다”고 했다. 뭘 잘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ahs@hankyung.com
조선소 현장에 축적된 노하우와 운영 경험에서부터 수직적 공급사슬로 이어진 대기업과 협력사 간 데이터 통합, 설계·구매·생산·물류 등 제조 전 과정에 걸친 실시간 데이터 연결, 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에 기반한 플랫폼 구축까지 통째로 공급해 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노조 동참을 끌어내는 건 또 다른 과제다. 현대중공업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어쩌면 한국형 스마트팩토리 모델은 이 과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에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SI(시스템통합) 등 비핵심(비주력) 계열사를 팔거나 계열분리하라”고 한 데 이어, 최근 공정위가 SI 실태조사에 착수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파괴적 혁신’이 일상이 된 마당에 핵심·비핵심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것부터 의문이다.
굳이 구분을 하려면 설득력 있는 잣대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특히 SI가 핵심 사업과 관계없다고 단정한 건 수긍하기 어렵다. 공정위가 비핵심으로 지목한 SI는 과거처럼 대기업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부대가 아니다. 현장에 가보면 IoT·클라우드·빅데이터·AI·블록체인·스마트팩토리·스마트물류 등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제조기업이 잇따라 데이터 기업을 선언할 정도로 핵심 사업의 ‘디지털 쌍둥이’ 경쟁력이 IT 계열사라면, 그 또한 핵심으로 보는 게 상식일 것이다. 당연히 법률상 일감 몰아주기의 예외 조건인 ‘긴급성’ ‘보안성’ ‘효율성’ 등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IT 계열사를 처분하라고 압박하는 건, 산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공정위는 “대기업 SI 실태조사는 실태조사일 뿐”이란 해명을 내놨지만, 문제의 핵심은 오로지 경영권 승계라는 기업 지배구조 프레임에 사로잡혀 내부거래를 ‘악(惡)’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리 되면 4차 산업혁명이 역풍을 맞을 위험성이 커진다. 일부 대기업은 SI 계열사를 처분하기 시작했다.
공정위의 산업 몰이해에 따른 부작용은 SI산업 위축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대기업에 벤처기업들을 인수해 달라며 일정기간 계열사 편입 유예라는 당근을 던져왔지만 효과가 없었다. 대기업 규제를 틀어쥔 공정위가 핵심·비핵심을 멋대로 나누고, 내부거래를 벌주겠다며 비핵심을 처분하라는 판국이니 당연한 결과다. 신산업 투자를 확대할 수도 계열사를 늘릴 수도 없으면, 대기업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지분 투자도 인수합병(M&A)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요즘 공정위가 ‘갑질’을 빌미 삼아 지식·아이디어·기술·브랜드·영업비밀 등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뒤흔들고 있는 모습도 위험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이상한 건 어느 부처 장관도 공정위의 무모한 질주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장관은 몰라도 경제활력부터 되찾겠다던 경제부총리, 4차 산업혁명 주무부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산업 주무부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말이 없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관들이 잘하고 있다”고 했다. 뭘 잘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