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명 구속·이재명은 무죄…'고무줄' 논란 커가는 직권남용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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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데 이어 바로 이튿날 같은 죄명으로 기소됐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직권남용죄의 판단 기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판사 재량에 의존하는 직권남용죄 판단 기준이 모호해 법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 보복을 우려해 법 적용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주장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는 모양새다.
○판사 재량 커 ‘예측 불가’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한국범죄방지재단(이사장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가 개최하고 ‘직권남용죄, 올바르게 적용되고 있는가?’란 주제로 진행된 학술강연회에 정홍원 전 국무총리, 정해창 전 법무부 장관, 정구영 전 검찰총장 등 법조계와 학계 120여명 인사가 참석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최근 ‘적폐수사’ ‘사법행정권 남용’ 등과 관련한 직권남용죄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높아지는 가운데 마련된 논의의 장이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직권남용 관련 고소·고발 건수는 1만4345건으로, 매년 5000~6000건을 기록하다 2017년(9741건)부터 대폭 증가하기 시작했다.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타인에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시키거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범죄다. 즉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공무상 권한에 포함되는 행위여야 하고 △권한을 남용해 △하급 관청이나 공무원 등의 의무가 아닌 일을 시켜야 한다. 5년 이하의 징역과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지난 16일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 형사재판 1심 무죄 선고를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지난 15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강신명 전 경찰청장도 죄명이 직권남용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 예측이 분분했던 이 지사 사건의 재판부는 “이 지사가 공무원을 동원해 강제입원 절차를 다소 무리하게 한 행위가 사회적 비난의 소지는 있지만, 절차 관여 행위 일체를 직권남용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성남시장으로서 가지는 강제입원 대상자에 대한 보건행정 권한을 남용한 것은 아니고, 성남시 공무원에게 이와 관련한 지시를 시킨 것도 공무와 무관한 일을 지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강 전 청장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청구서에 기재된 혐의와 관련한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강 전 청장은 2016년 4월 제20대 총선 당시 경찰 정보라인을 이용해 친박계를 위한 선거 정보를 수집하고, 청와대·여당에 비판적인 인물을 사찰하고 관련 문건을 작성한 혐의를 갖는다.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직권남용죄 조문상 ‘직권’ ‘남용’ ‘의무’ 등 단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 법적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선실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특정 보수 단체 자금지원을 요구한 ‘화이트리스트’ 사건에선 판사 재량에 따라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해당 행위가 비서실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고 직권남용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반면, 2심은 반대로 유죄를 선고했다.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다.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판사 사찰 문건 등을 작성하도록 시켰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 대해서도 유무죄 관측이 엇갈린다.
○“정치보복 악용”vs“공권력 제한 필요”
이날 강연회에선 직권남용죄의 해석과 적용 범위 등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사로 나선 이완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는 “직권남용죄는 정권교체 시 정치적 보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국정 운영과정에서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됐을 경우 여론 무마를 위해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직권’의 범위를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강제력 있는 직무로 한정하고, 남용행위도 사익적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공무원에게 직권남용죄를 더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성돈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직권남용죄는 국민에 의해 위임받은 공권력의 행사가 정의롭고 공정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며 “공무원의 지위가 올라갈수록 그 직무 범위의 반경이 넓어지기 때문에 명백한 직무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넘어 권한 범위를 넘어선 월권적 행위를 했을 때도 직권남용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직권남용죄는 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처벌 범위가 넓고 형량이 높다. 스위스는 공무원이 본인 혹은 제3자에게 불법으로 이익을 얻거나, 타인에게 불이익을 부과하기 위한 행동으로 직권남용의 범위를 제한한다. 독일은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돼야 범죄가 성립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하지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형량이 더 낮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판사 재량 커 ‘예측 불가’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한국범죄방지재단(이사장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가 개최하고 ‘직권남용죄, 올바르게 적용되고 있는가?’란 주제로 진행된 학술강연회에 정홍원 전 국무총리, 정해창 전 법무부 장관, 정구영 전 검찰총장 등 법조계와 학계 120여명 인사가 참석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최근 ‘적폐수사’ ‘사법행정권 남용’ 등과 관련한 직권남용죄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높아지는 가운데 마련된 논의의 장이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직권남용 관련 고소·고발 건수는 1만4345건으로, 매년 5000~6000건을 기록하다 2017년(9741건)부터 대폭 증가하기 시작했다.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타인에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시키거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범죄다. 즉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공무상 권한에 포함되는 행위여야 하고 △권한을 남용해 △하급 관청이나 공무원 등의 의무가 아닌 일을 시켜야 한다. 5년 이하의 징역과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지난 16일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 형사재판 1심 무죄 선고를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지난 15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강신명 전 경찰청장도 죄명이 직권남용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 예측이 분분했던 이 지사 사건의 재판부는 “이 지사가 공무원을 동원해 강제입원 절차를 다소 무리하게 한 행위가 사회적 비난의 소지는 있지만, 절차 관여 행위 일체를 직권남용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성남시장으로서 가지는 강제입원 대상자에 대한 보건행정 권한을 남용한 것은 아니고, 성남시 공무원에게 이와 관련한 지시를 시킨 것도 공무와 무관한 일을 지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강 전 청장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청구서에 기재된 혐의와 관련한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강 전 청장은 2016년 4월 제20대 총선 당시 경찰 정보라인을 이용해 친박계를 위한 선거 정보를 수집하고, 청와대·여당에 비판적인 인물을 사찰하고 관련 문건을 작성한 혐의를 갖는다.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직권남용죄 조문상 ‘직권’ ‘남용’ ‘의무’ 등 단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 법적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선실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특정 보수 단체 자금지원을 요구한 ‘화이트리스트’ 사건에선 판사 재량에 따라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해당 행위가 비서실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고 직권남용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반면, 2심은 반대로 유죄를 선고했다.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다.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판사 사찰 문건 등을 작성하도록 시켰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 대해서도 유무죄 관측이 엇갈린다.
○“정치보복 악용”vs“공권력 제한 필요”
이날 강연회에선 직권남용죄의 해석과 적용 범위 등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사로 나선 이완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는 “직권남용죄는 정권교체 시 정치적 보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국정 운영과정에서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됐을 경우 여론 무마를 위해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직권’의 범위를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강제력 있는 직무로 한정하고, 남용행위도 사익적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공무원에게 직권남용죄를 더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성돈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직권남용죄는 국민에 의해 위임받은 공권력의 행사가 정의롭고 공정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며 “공무원의 지위가 올라갈수록 그 직무 범위의 반경이 넓어지기 때문에 명백한 직무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넘어 권한 범위를 넘어선 월권적 행위를 했을 때도 직권남용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직권남용죄는 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처벌 범위가 넓고 형량이 높다. 스위스는 공무원이 본인 혹은 제3자에게 불법으로 이익을 얻거나, 타인에게 불이익을 부과하기 위한 행동으로 직권남용의 범위를 제한한다. 독일은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돼야 범죄가 성립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하지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형량이 더 낮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