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상 적자 2조원대 韓電…전기료 올릴까, 정부에 손 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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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수렁' 韓電, 해법 없나
국내 최대 공기업 수난시대
한전 소액주주 20일 시위
국내 최대 공기업 수난시대
한전 소액주주 20일 시위
직원 수 2만3000여 명의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적자 수렁’에 빠졌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서부발전 등 자회사 실적을 포함한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올 1분기에만 6299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1분기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본격화한 2017년 4분기 이후 흑자를 낸 분기는 작년 3분기(1조3952억원)뿐이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지속되는 한 전기료 인상 없이는 한전이 적자 수렁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기료 인상을 단행하지 않고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비상경영에도 적자 수렁
작년 4월 김종갑 사장 취임 직후 비상경영에 나선 한전은 올해 역시 영업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초 작성한 ‘재무위기 비상경영 추진계획안’에 따르면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올해 2조4000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자체적인 비용 절감만으로는 적자 축소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한전은 작년에도 208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년 연속 손실을 내면 2011~2012년 후 6년 만이다. 2011년은 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등에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에 따른 원전 중단 등 외부 요인이 컸지만 지금은 탈원전 정책 외 다른 요인이 없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탈원전을 선언한 현 정부에서 원전 이용률이 크게 오르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미세먼지 때문에 석탄발전까지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값싸고 안정적인 원전을 놔두고 비싼 액화천연가스(LNG)와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고 있어 한전 적자폭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작년 한전이 구입한 LNG와 재생에너지 단가는 각각 ㎾h당 122.45원, 168.64원이었다. 원자력 단가(62.05원)보다 최대 세 배가량 비쌌다. 원전 이용률이 낮아질수록 한전 재무구조가 악화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한전이 한 해 10조원 안팎의 이익을 내던 2014~2016년의 원전 이용률은 최고 85%를 넘었다. 올 1분기 75.8%를 기록한 원전 이용률은 올여름 전력피크 시기를 포함해도 연평균 77.4% 수준에 그칠 것이란 게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의 전망이다. 이 밖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취업난 완화를 위한 신입직원 채용 확대, 신재생 발전 구입비용 증대 등도 한전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전기요금 인상이냐 재정 투입이냐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한전이 적자를 줄일 처방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이다. 한전과 정부는 현재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및 산업용 경부하 요금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다음달 3단계인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1.5단계로 완화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먼저 내놓기로 했다.
한전 내부에서도 꾸준히 ‘불 지피기’에 나서고 있다. 작년 김 사장이 ‘두부 장수론’을 들고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사장은 페이스북에 “수입 콩값이 많이 뛰었는데도 그만큼 두부값을 올리지 못해 두부값이 콩값보다 더 싸졌다”며 “원료비 인상에 따라 전기요금을 올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원료비 연동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원료비 연동제는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력 태양광 석탄 석유 등 발전 단가의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이 자동 결정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도시가스 등 다른 에너지원엔 모두 원료비 연동제가 적용되고 있다. 한전이 과다 이익을 가져갈 수 없지만 일정 수익이 보장돼 적자가 나더라도 최소화할 수 있다. 임낙송 한전 영업계획처장 역시 최근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한전은 전기요금으로 운영되는 기업이지 ‘전기세’를 걷는 곳이 아니다”며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미래 세대에게 (전기요금 인상) 부담이 전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력 정책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원료비 연동제에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전기요금제 개편 과정에서 요금을 올리거나 원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란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률은 2030년까지 10.9%(2017년 대비)에 그칠 것”이라고 수차례 단언해 왔다. LNG와 태양광 등의 발전 단가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원료비 연동제=전기요금 인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또 다른 방안은 재정 투입이다. 정부는 2008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뛰면서 한전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해 보전해준 적이 있다. 당시 투입한 세금은 6680억원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가 쉽게 꺼낼 수 없는 카드다. 세금 중독 비판에다 올 들어 세수 위축 조짐까지 보이고 있어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임기 내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못 박아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며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고 세금을 직접 투입할 경우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적자가 난다고 해서 한전 직원들 피해가 커지는 건 아니다. 공기업 성격상 성과급 역시 별 차질 없이 받을 수 있다. 국민 부담만 누적될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일부 수정해 신한울 3·4호기 건설만이라도 재개해야 한다는 게 한전 소액주주들의 주장이다. 값싸고 안정적인 원자력발전 없이는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이 어렵다는 점에서다.
한전 소액주주들은 20일 서울 강남대로 한전지사 앞에서 ‘한전 주가 하락 피해 탄원 및 한전 흑자 경영 촉구를 위한 집회’를 약 한 달간 릴레이로 개최한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
작년 4월 김종갑 사장 취임 직후 비상경영에 나선 한전은 올해 역시 영업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초 작성한 ‘재무위기 비상경영 추진계획안’에 따르면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올해 2조4000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자체적인 비용 절감만으로는 적자 축소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한전은 작년에도 208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년 연속 손실을 내면 2011~2012년 후 6년 만이다. 2011년은 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등에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에 따른 원전 중단 등 외부 요인이 컸지만 지금은 탈원전 정책 외 다른 요인이 없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탈원전을 선언한 현 정부에서 원전 이용률이 크게 오르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미세먼지 때문에 석탄발전까지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값싸고 안정적인 원전을 놔두고 비싼 액화천연가스(LNG)와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고 있어 한전 적자폭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작년 한전이 구입한 LNG와 재생에너지 단가는 각각 ㎾h당 122.45원, 168.64원이었다. 원자력 단가(62.05원)보다 최대 세 배가량 비쌌다. 원전 이용률이 낮아질수록 한전 재무구조가 악화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한전이 한 해 10조원 안팎의 이익을 내던 2014~2016년의 원전 이용률은 최고 85%를 넘었다. 올 1분기 75.8%를 기록한 원전 이용률은 올여름 전력피크 시기를 포함해도 연평균 77.4% 수준에 그칠 것이란 게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의 전망이다. 이 밖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취업난 완화를 위한 신입직원 채용 확대, 신재생 발전 구입비용 증대 등도 한전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전기요금 인상이냐 재정 투입이냐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한전이 적자를 줄일 처방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이다. 한전과 정부는 현재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및 산업용 경부하 요금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다음달 3단계인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1.5단계로 완화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먼저 내놓기로 했다.
한전 내부에서도 꾸준히 ‘불 지피기’에 나서고 있다. 작년 김 사장이 ‘두부 장수론’을 들고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사장은 페이스북에 “수입 콩값이 많이 뛰었는데도 그만큼 두부값을 올리지 못해 두부값이 콩값보다 더 싸졌다”며 “원료비 인상에 따라 전기요금을 올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원료비 연동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원료비 연동제는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력 태양광 석탄 석유 등 발전 단가의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이 자동 결정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도시가스 등 다른 에너지원엔 모두 원료비 연동제가 적용되고 있다. 한전이 과다 이익을 가져갈 수 없지만 일정 수익이 보장돼 적자가 나더라도 최소화할 수 있다. 임낙송 한전 영업계획처장 역시 최근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한전은 전기요금으로 운영되는 기업이지 ‘전기세’를 걷는 곳이 아니다”며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미래 세대에게 (전기요금 인상) 부담이 전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력 정책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원료비 연동제에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전기요금제 개편 과정에서 요금을 올리거나 원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란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률은 2030년까지 10.9%(2017년 대비)에 그칠 것”이라고 수차례 단언해 왔다. LNG와 태양광 등의 발전 단가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원료비 연동제=전기요금 인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또 다른 방안은 재정 투입이다. 정부는 2008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뛰면서 한전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해 보전해준 적이 있다. 당시 투입한 세금은 6680억원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가 쉽게 꺼낼 수 없는 카드다. 세금 중독 비판에다 올 들어 세수 위축 조짐까지 보이고 있어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임기 내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못 박아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며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고 세금을 직접 투입할 경우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적자가 난다고 해서 한전 직원들 피해가 커지는 건 아니다. 공기업 성격상 성과급 역시 별 차질 없이 받을 수 있다. 국민 부담만 누적될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일부 수정해 신한울 3·4호기 건설만이라도 재개해야 한다는 게 한전 소액주주들의 주장이다. 값싸고 안정적인 원자력발전 없이는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이 어렵다는 점에서다.
한전 소액주주들은 20일 서울 강남대로 한전지사 앞에서 ‘한전 주가 하락 피해 탄원 및 한전 흑자 경영 촉구를 위한 집회’를 약 한 달간 릴레이로 개최한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