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탈원전 놓고 또 홍길동 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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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한이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두 차례 동해안으로 쐈을 때 국방부의 반응이 희한했습니다. 군사 전문가들이 ‘러시아 이스칸데르 지대지 탄도 미사일을 모방한 무기’로 추정하자 군 당국은 “확실하지 않다. 분석 중이다.”고 했지요. 이후 북한 발사체는 ‘홍길동 미사일’ 또는 ‘불상(부처님 모양) 미사일’로 불리게 됐습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청와대 때문에 국방부가 ‘미사일’을 미사일로 못 부른다고 풍자한 거지요.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역대 최대 규모의 1분기 손실(연결재무제표 기준 6299억원)을 기록하자 산업통상자원부 반응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은 한전 적자와 ‘전혀’ 무관하다”고 했습니다.
하나씩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부가 밝힌 한전의 1분기 최대 적자 요인은 ‘발전용 액화천연가스(LNG) 등 국제 연료가격 상승’입니다. 발전용 LNG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13.4% 상승해 여기서만 7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었다는 겁니다. 또 1분기 원전 이용률이 대폭 개선됐는데도 적자가 커졌기 때문에 ‘원전과 한전 손익 간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이 입증됐다’는 입장이죠.
LNG 가격이 많이 뛰었고 올 1분기의 원전 이용률이 작년보다 상승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과거 LNG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때도 한전은 올해처럼 큰 폭의 적자를 내지 않았으니까요. 문제는 적정 수준의 이용률입니다. 올 1분기 원전 이용률이 75.8%로 작년(평균 65.9%)보다 오른 건 맞지만, 2014~2016년의 평균 85%가량보다는 훨씬 낮습니다. 참고로 우리보다 원전 숫자가 4배 정도 많은 미국의 경우 지난 5년간 원전 이용률이 평균 90%를 넘었습니다.
원전 이용률이 떨어지면서 모자란 전력을 대신 생산한 건 LNG 발전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원전 가동을 갑자기 줄이면, 대체할 수 있는 발전원은 LNG밖에 없습니다. 원전과 같은 기저 발전원인 석탄화력의 경우 갑자기 가동률을 높이기 어렵고 미세먼지 문제도 있으니까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더욱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좁은 영토와 간헐성(태양광은 태양이 떠있는 동안, 풍력은 바람이 불 때만 가동) 문제 때문이지요.
결국 원전 대신 LNG 가동률을 높였는데, 마침 이 기간 중 LNG 값이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이 뛴 겁니다. 작년 한전이 구입한 LNG와 재생에너지 단가는 ㎾h당122.45원 및 168.64원이었습니다. 원자력 발전 단가(62.05원)보다 최대 3배가량 비쌌지요. 정부가 ‘탈원전’이란 용어 대신 ‘에너지 전환’이라고 바꿔 부르고 있지만 탈원전이든 에너지 전환이든 이 정책이 한전 적자에 큰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탈원전 선언 이전인 2016년만 해도 국내 원전 발전 비중은 전체의 30.0%였는데, 작년엔 23.4%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럼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본격화하지 않고 있다”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은 타당할까요. 이들은 그 근거로 “원전 이용률이 떨어진 건 정책 탓이 아니라 정비일수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전에 대한 안전 점검을 철저하게 하다 보니 정비일수가 늘었을 뿐이란 겁니다. 또 정비 및 재가동 권한은 독립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갖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주장이 근거가 있으려면 ‘정비일수 증가가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없고, 원안위가 완전한 독립성·전문성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또 2013년 원전부품 비리가 이슈화됐을 때 원전 정비일수가 급증했습니다. 안전 점검을 대폭 강화했던 것이죠. 이 기간 중 원전 계획예방정비일수는 예년 대비 500일 정도 늘었습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후 정비일수는 1000일 정도 급증했지요. 탈원전 선언 외 다른 이슈도 없었습니다. 경주 지진이 있었지만 리히터 규모가 내진 설계 기준을 크게 밑돌았고 국내 원전엔 전혀 타격을 주지 않았습니다.
국내 원전의 가동중단·재가동 승인 권한을 가진 원안위의 독립성·전문성도 의심을 받습니다. 원자력 전문가인 김용환 전 원안위 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 후였던 2017년 말, 임기를 1년4개월 남겨놓고 사표를 냈습니다. 후임자로는 반핵운동가 출신인 강정민 위원장이 선임돼 작년 10월까지 원안위를 이끌었지요. 원안위 뿐만 아니라 원자력 정책 관련 정부기구엔 탈원전을 주장해온 환경론자들이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현 정부에서도 원전 숫자가 증가하니 탈원전 정책이 본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맞지 않습니다. 탈원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향후 5기의 신규 원전이 건설되는 건 맞지만, 원래는 11기가 증설돼야 합니다. 4차산업 혁명과 전기차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수라고 과거 원안위가 판단했던 거지요. 현 정부는 이 중 6기의 신설을 백지화했습니다.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는 물론 공정률이 30%에 달하는 신한울 3·4호기까지 무효화했지요. 이미 투입한 돈은 매몰비용으로 날아가게 됐습니다.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작년 6월 긴급 이사회를 열어 가동한 지 35년 된 월성 1호기 원전의 조기폐지를 결정했습니다. 약 7000억원을 투입해 안전설비를 보강했고, 과거 원안위가 2022년 11월까지 연장 가동을 승인했던 원전입니다. 해외에선 설비 보강을 거쳐 60년까지 연장 운영하는 원전이 많습니다.
정부가 탈원전(에너지 전환)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한전 적자 등 부작용도 상당부분 여기서 비롯되고 있구요. 이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국정 기조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고용 참사 및 자영업 경기 침체와 무관하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역대 최대 규모의 1분기 손실(연결재무제표 기준 6299억원)을 기록하자 산업통상자원부 반응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은 한전 적자와 ‘전혀’ 무관하다”고 했습니다.
하나씩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부가 밝힌 한전의 1분기 최대 적자 요인은 ‘발전용 액화천연가스(LNG) 등 국제 연료가격 상승’입니다. 발전용 LNG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13.4% 상승해 여기서만 7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었다는 겁니다. 또 1분기 원전 이용률이 대폭 개선됐는데도 적자가 커졌기 때문에 ‘원전과 한전 손익 간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이 입증됐다’는 입장이죠.
LNG 가격이 많이 뛰었고 올 1분기의 원전 이용률이 작년보다 상승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과거 LNG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때도 한전은 올해처럼 큰 폭의 적자를 내지 않았으니까요. 문제는 적정 수준의 이용률입니다. 올 1분기 원전 이용률이 75.8%로 작년(평균 65.9%)보다 오른 건 맞지만, 2014~2016년의 평균 85%가량보다는 훨씬 낮습니다. 참고로 우리보다 원전 숫자가 4배 정도 많은 미국의 경우 지난 5년간 원전 이용률이 평균 90%를 넘었습니다.
원전 이용률이 떨어지면서 모자란 전력을 대신 생산한 건 LNG 발전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원전 가동을 갑자기 줄이면, 대체할 수 있는 발전원은 LNG밖에 없습니다. 원전과 같은 기저 발전원인 석탄화력의 경우 갑자기 가동률을 높이기 어렵고 미세먼지 문제도 있으니까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더욱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좁은 영토와 간헐성(태양광은 태양이 떠있는 동안, 풍력은 바람이 불 때만 가동) 문제 때문이지요.
결국 원전 대신 LNG 가동률을 높였는데, 마침 이 기간 중 LNG 값이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이 뛴 겁니다. 작년 한전이 구입한 LNG와 재생에너지 단가는 ㎾h당122.45원 및 168.64원이었습니다. 원자력 발전 단가(62.05원)보다 최대 3배가량 비쌌지요. 정부가 ‘탈원전’이란 용어 대신 ‘에너지 전환’이라고 바꿔 부르고 있지만 탈원전이든 에너지 전환이든 이 정책이 한전 적자에 큰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탈원전 선언 이전인 2016년만 해도 국내 원전 발전 비중은 전체의 30.0%였는데, 작년엔 23.4%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럼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본격화하지 않고 있다”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은 타당할까요. 이들은 그 근거로 “원전 이용률이 떨어진 건 정책 탓이 아니라 정비일수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전에 대한 안전 점검을 철저하게 하다 보니 정비일수가 늘었을 뿐이란 겁니다. 또 정비 및 재가동 권한은 독립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갖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주장이 근거가 있으려면 ‘정비일수 증가가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없고, 원안위가 완전한 독립성·전문성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또 2013년 원전부품 비리가 이슈화됐을 때 원전 정비일수가 급증했습니다. 안전 점검을 대폭 강화했던 것이죠. 이 기간 중 원전 계획예방정비일수는 예년 대비 500일 정도 늘었습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후 정비일수는 1000일 정도 급증했지요. 탈원전 선언 외 다른 이슈도 없었습니다. 경주 지진이 있었지만 리히터 규모가 내진 설계 기준을 크게 밑돌았고 국내 원전엔 전혀 타격을 주지 않았습니다.
국내 원전의 가동중단·재가동 승인 권한을 가진 원안위의 독립성·전문성도 의심을 받습니다. 원자력 전문가인 김용환 전 원안위 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 후였던 2017년 말, 임기를 1년4개월 남겨놓고 사표를 냈습니다. 후임자로는 반핵운동가 출신인 강정민 위원장이 선임돼 작년 10월까지 원안위를 이끌었지요. 원안위 뿐만 아니라 원자력 정책 관련 정부기구엔 탈원전을 주장해온 환경론자들이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현 정부에서도 원전 숫자가 증가하니 탈원전 정책이 본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맞지 않습니다. 탈원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향후 5기의 신규 원전이 건설되는 건 맞지만, 원래는 11기가 증설돼야 합니다. 4차산업 혁명과 전기차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수라고 과거 원안위가 판단했던 거지요. 현 정부는 이 중 6기의 신설을 백지화했습니다.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는 물론 공정률이 30%에 달하는 신한울 3·4호기까지 무효화했지요. 이미 투입한 돈은 매몰비용으로 날아가게 됐습니다.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작년 6월 긴급 이사회를 열어 가동한 지 35년 된 월성 1호기 원전의 조기폐지를 결정했습니다. 약 7000억원을 투입해 안전설비를 보강했고, 과거 원안위가 2022년 11월까지 연장 가동을 승인했던 원전입니다. 해외에선 설비 보강을 거쳐 60년까지 연장 운영하는 원전이 많습니다.
정부가 탈원전(에너지 전환)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한전 적자 등 부작용도 상당부분 여기서 비롯되고 있구요. 이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국정 기조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고용 참사 및 자영업 경기 침체와 무관하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