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담은 農心 vs 얼음 뚫는 생명력…사진보다 더 정교한 극사실 그림 대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윤병락·박성민 씨 비디갤러리 2인전
한국의 극사실주의 화풍(사진처럼 정교한 ‘눈속임 회화’)은 1970년대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과 동시에 출발했다. 서양화가 지석철 고영훈 이석주 주태석 김강용 등은 국내외 화단에 들불처럼 번지던 단색조의 미니멀한 추상화를 뒤로하고 극사실주의 작업에 뛰어들었다. 사진 기술에 당당하게 맞서면서 회화의 가능성에 무게를 뒀고, 미래 지향적 사유를 공유하려고 시도했다. 2000년대에는 윤병락 박성민 도성욱 이정웅 안성하 등이 발 빠르게 동참해 국내외 화단에 이름을 날렸다.
1968년생 동갑내기 극사실주의 화가 윤병락 박성민 씨가 모처럼 뭉쳤다. 사과와 얼음이라는 각기 다른 소재를 다루는 두 사람이 다음달 3일까지 서울 퇴계로 비디갤러리에서 2인전을 펼친다.
문화적으로 풍족했던 1990년대를 보내고 어느덧 사회의 중심축이 된 이들은 디지털사진이 범람하는 시대에 꿋꿋하게 맞서 대상을 정교하게 담으려는 신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전시장 1, 2층에는 얄팍한 트렌드에 의지하기보다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자기성찰에 독창성까지 가미한 근작 10점씩을 걸었다.
‘사과작가’ 윤씨는 “어렵기 짝이 없는 ‘머리로 그린 미술’에 지친 사람들에게 ‘손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며 “시각예술은 무한한 정열과 에너지를 쏟아야 사랑이 깃든다는 걸 느꼈다”고 강조했다. 윤씨가 올해로 사과 그림에 꽂힌 지 딱 16년이 됐다. 농사를 짓는 부모의 소중한 땀방울을 보며 사과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2003년이다. 그에게 사과 그림은 모방의 새로운 형태를 창출해내는 사유 과정이다. 결실의 계절에 느끼는 포만감과 풍부한 감성의 나래를 상상의 밑뿌리로 어루만진다. 한 폭의 캔버스는 수천 번의 붓질과 땀방울, 고집과 끈기를 품고 있다. ‘사과보다 더 사과’ 같은 그래서 사진인 듯 보이는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사실이라는 믿음을 흔들어 놓는다.
박씨는 2002년 5월부터 투명한 얼음덩어리 속에서 피어난 꽃이나 덩굴 잎, 과일을 극사실적으로 그려왔다. 얼음덩이를 비집고 나오는 사물들을 포착한 ‘아이스캡슐’ 시리즈는 노동집약적이고, 손맛이 살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시 때마다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2008년에는 고아한 운치가 절로 배어나는 이조백자 그릇에 담긴 얼음을 활용해 더 주목받았다.
박씨의 작품은 바탕의 흰색, 검은색과 어우러지며 극사실주의 화풍의 싱그럽고도 세련된 미감을 선사한다. 때론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판을 활용해 은빛 순결함을 보탠다. 박씨는 “얼음이야말로 물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상”이라며 “고체와 액체로서의 얼음은 존재에 대한 고정된 기억을 환기하고, 기체의 물성을 지닌 얼음은 곧 날아가 사라져버리는 기억의 속성에 대한 암시를 담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육면체 형태의 수많은 얼음덩어리를 극사실 기법으로 그린 뒤 화면에 바둑판처럼 배열해 단색화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문화적으로 풍족했던 1990년대를 보내고 어느덧 사회의 중심축이 된 이들은 디지털사진이 범람하는 시대에 꿋꿋하게 맞서 대상을 정교하게 담으려는 신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전시장 1, 2층에는 얄팍한 트렌드에 의지하기보다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자기성찰에 독창성까지 가미한 근작 10점씩을 걸었다.
‘사과작가’ 윤씨는 “어렵기 짝이 없는 ‘머리로 그린 미술’에 지친 사람들에게 ‘손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며 “시각예술은 무한한 정열과 에너지를 쏟아야 사랑이 깃든다는 걸 느꼈다”고 강조했다. 윤씨가 올해로 사과 그림에 꽂힌 지 딱 16년이 됐다. 농사를 짓는 부모의 소중한 땀방울을 보며 사과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2003년이다. 그에게 사과 그림은 모방의 새로운 형태를 창출해내는 사유 과정이다. 결실의 계절에 느끼는 포만감과 풍부한 감성의 나래를 상상의 밑뿌리로 어루만진다. 한 폭의 캔버스는 수천 번의 붓질과 땀방울, 고집과 끈기를 품고 있다. ‘사과보다 더 사과’ 같은 그래서 사진인 듯 보이는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사실이라는 믿음을 흔들어 놓는다.
박씨는 2002년 5월부터 투명한 얼음덩어리 속에서 피어난 꽃이나 덩굴 잎, 과일을 극사실적으로 그려왔다. 얼음덩이를 비집고 나오는 사물들을 포착한 ‘아이스캡슐’ 시리즈는 노동집약적이고, 손맛이 살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시 때마다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2008년에는 고아한 운치가 절로 배어나는 이조백자 그릇에 담긴 얼음을 활용해 더 주목받았다.
박씨의 작품은 바탕의 흰색, 검은색과 어우러지며 극사실주의 화풍의 싱그럽고도 세련된 미감을 선사한다. 때론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판을 활용해 은빛 순결함을 보탠다. 박씨는 “얼음이야말로 물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상”이라며 “고체와 액체로서의 얼음은 존재에 대한 고정된 기억을 환기하고, 기체의 물성을 지닌 얼음은 곧 날아가 사라져버리는 기억의 속성에 대한 암시를 담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육면체 형태의 수많은 얼음덩어리를 극사실 기법으로 그린 뒤 화면에 바둑판처럼 배열해 단색화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