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17일은 세계 고혈압의 날이다. 국내 30세 이상 성인 중 고혈압 환자는 26.9%다. 성인 4명 중 1명이 고혈압 환자라는 의미다. 고혈압은 혈압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는 질환이다. 대부분 혈압이 심각한 수준까지 올라가도 증상이 없다. 하지만 심장발작이나 뇌졸중 등 치명적인 질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정욱진 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대한고혈압학회 간행이사)는 “세계보건기구(WHO) 연구에 따르면 세계 사망 위험 요인 1위는 고혈압”이라며 “높은 압력은 심장과 혈관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잘 조절하지 않으면 출혈성·허혈성 뇌졸중, 심부전, 심근경색, 부정맥, 망막증, 대동맥박리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고혈압 합병증은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고혈압 전 단계부터 위험

세계 의학계가 높은 혈압이 문제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WHO와 미국 국가 고혈압 교육 프로그램이 1970년대에 널리 알려지면서 고혈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고혈압은 성인의 수축기 혈압이 140㎜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90㎜Hg 이상일 때를 말한다.

미국심장학회는 2017년 11월 고혈압 환자의 진료지침을 수축기 130㎜Hg, 이완기 80㎜Hg 이상으로 조정했다. 정 교수는 “고혈압 전 단계인 사람도 정상 혈압인 사람보다 생활습관이 좋지 않기 때문에 고혈압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이들도 적극적인 예방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고혈압의 치료는 정확한 진단부터 시작해야 한다. 진료실에서 혈압을 잴 때 유독 혈압이 높거나 반대로 병원에서는 정상이지만 일상생활을 할 때는 혈압이 높은 환자도 있다. 정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 1시간 이내에 화장실에 다녀온 뒤 15분 후, 1분 간격으로 두 번 재고 잠들기 전 같은 방법으로 측정해 나온 가정 혈압이 진짜 혈압”이라고 했다.

생활습관 조절이 중요

혈압이 높다고 무조건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1차성 고혈압으로 불리는 본태성 고혈압은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국내 고혈압 환자 대부분이 본태성 고혈압이다. 음주, 흡연, 고령, 운동 부족, 비만, 짜게 먹는 습관,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과 가족력이 원인으로 꼽힌다. 정 교수는 “체중이 1㎏만 줄어도 수축기 혈압이 1㎜Hg 감소할 수 있는데 약물로 혈압을 조절하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며 “환자 상태에 따라 저염·소식 식이요법을 지키고 금연, 절주, 운동 등 생활습관을 조절해 혈압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고령이거나 가족력 때문에 고혈압이 생겨 생활습관 개선으로도 조절하기 어려운 환자는 약물로 혈압을 조절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혈관 탄력이 떨어져 고혈압이 생긴 환자는 생활요법만으로 목표 혈압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다양한 고혈압 치료제를 환자 특성에 맞춰 올바르게 처방받는다면 고혈압은 충분히 조절이 가능한 질환”이라며 “약제 복용과 함께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젊은 층은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할 것이라는 두려움, 건강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고혈압의 위험성을 간과한다”며 “전문가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은 뒤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필요할 때는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