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썰쩐] (21) 200억 자산가 가수 방미 "미국, 최고의 부동산 투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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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부동산 전문가로 돌아온 가수 방미
한남동의 유엔빌리지, 강남 신사동의 집 겸 사무실, 미국 LA 마리나 델 레이의 아파트, 제주도 서귀포 중문의 리조트, 청담동 상가 등등
지난 14일 신사동의 집에서 만난 방미는 "국내 부동산은 각종 규제로 돈을 벌기 더욱 어려워졌다"며 "해외 부동산에 눈을 돌릴 적기가 왔다"고 말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는 달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는 것이다.
◆"어려웠던 유년, 돈 벌고 싶었다" 방미의 유년 시절은 가난했다. 사업이 망하고 아버지는 화투에도 손을 댔다. 방 하나 두개 짜리 집을 돌아다녔다. 한 집에 여러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을 때는 마당에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아침마다 곤욕이었다. 성공하면 집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방미는 1980년 처음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 그의 인기곡인 '날 보러 와요'와 같은 이름의 영화 출연료, 밤무대를 다니면서 번 돈 등 700만원이 종잣돈이었다. 1982년 방배동에 있는 32평짜리 궁전아파트를 2500만원 정도에 샀다. 첫 집이었다. 2년 뒤 여의도 은하아파트를 4000만원에 구입했다. 이듬해 동부이촌동의 신동아아파트를 8000만원에 매입했고, 이후 6000만원의 은행 대출을 끼고 방배동 신삼호아파트를 1억5000만원에 샀다. 이렇게 서른 번 이상 이사를 다니며 부를 축적했다.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왔을 때에는 자산이 200억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1980년 아파트붐이 일었죠. 당시는 아파트를 사면 손해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관련 세금도 적었구요."
◆ "미국, 최고의 부동산 투자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미국에서 어학원에 다녔습니다. 유학 자금으로 달러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8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이 2000원까지 올라갔죠. 귀국 당시 생각지 못한 환차익을 얻었고, 환율이 이렇게 크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기는 당하기도 했지만, 부동산으로는 실패한 적이 없다"며 "투자를 결정할 때 관련 지역에 장기 체류하며 입지는 물론 동네 사람들의 인품까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국내는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9·13 부동산 대책이후 대출 규제가 강해졌다. 그러나 미국은 신용도가 높은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부동산을 구입할 때 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의 신용도를 쌓기 위해서는 현지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현금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개인 체크카드를 발급받아 3개월 정도 잘 관리하면 신용도가 쌓인다. 이를 바탕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세제에 있어서도 미국이 부동산 투자에 있어 더 매력적입니다. 한국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임대소득세 종합소득세 취·등록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이 많지만 미국은 취·등록세가 없습니다."
또 집을 살 때 받은 대출금의 이자를 대부분 세액공제해준다. 신용도를 잘 쌓으면 대출금에 대한 12개월 이자와 각종 세금을 계산해 1년 두 번 국세청에서 환급해주는데, 이 금액이 꽤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 '1031 교환' 세법에 따라 부동산 매각 후 더 규모가 큰 부동산에 재투자할 경우 양도세를 이연해준다. 주거용 부동산에서 2년 이상 살았다면 양도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방미가 미국을 최고의 부동산 투자처라고 말하는 이유는 세제 혜택 외에도 거래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여행 비자, 무비자로도 부동산을 살 수 있고, 변호사나 에스크로(제3자 위탁기관)을 통해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진다.
방미는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 부동산 투자는 권장하지 않는다"며 "이들 국가는 외국인이 단독으로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어 현지인이 필요한데, 수익배분 문제로 현지인과의 분쟁이 많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자산에 대해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매달 수천만원을 쓰는 현재의 생활을 위해서는 200억원 이상은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방미는 이제 자신을 위해 돈을 쓰고 있다. 해외에 갈 때 비즈니스석을 타고, 호텔도 좋은 곳에만 묵는다. 차도 좋은 차를 탄다. 남은 인생 동안 번 돈을 다 쓰고 갈 생각이다.
방미는 자신에게 큰 힘이 됐던 요가를 통한 기부를 계획하고 있다. 요가원을 설립해 자신이 직접 무료로 가르치기도 하면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사진·영상=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