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뜸과 슬픔 넘어 시민 안식처로, 마을 이장·재단 측 "방문객에 감사"
'시민'이 되려던 대통령 귀향지…봉하마을 어떻게 바뀌었나
"야∼ 기분좋다"
고향에 돌아와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고자 했던 그가 운집한 1만여 환영 인파를 향해 국정 부담을 모두 벗고 "정말 마음 놓고 한마디" 한 말이다.

2008년 2월 25일 오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직을 마무리하고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귀향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첫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 오후 3시 40분께 노 전 대통령 내외가 탄 승용차가 밀양역을 거쳐 봉하마을에 도착하자 환영 인파가 특설무대에서 마을 입구까지 200m 이상 길게 늘어서 태극기와 노란 풍선을 흔들며 "노무현", "환영합니다"를 연호했다.

40가구에 70여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농촌 마을은 그날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대통령 귀향 전 사저 공사와 생가 복원공사 등이 진행됐지만 귀향 소식이 전해진 후 방문객 행렬이 본격화되면서 주민들 생활도 크게 바꿔 놓았다.

매일 전국에서 시민들이 몰려와 "대통령님 나와주세요"를 외치고 밀짚모자를 쓴 전직 대통령이 나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인 초창기엔 주민들도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귀향 450여일 만에 서거한 뒤 한동안 분위기는 침울했고, 주민들과 노무현 재단 관계자들과 관계도 약간 서먹서먹했다.
'시민'이 되려던 대통령 귀향지…봉하마을 어떻게 바뀌었나
요즘은 재단과도 잘 지내고 서로 도우며 같이 가야 한다는 인식을 하는 분위기다.

서거 직후 추모객들은 전국에서 주말은 주말대로, 평일엔 평일대로 몰려들어 5월 전후 주말과 휴일이면 마을엔 온통 주차 전쟁이 벌어졌다.

귀향 첫해 봉하마을 방문객이 약 85만명이었고 추모객이 몰린 다음 해엔 126만여명으로 급증했다.

그 후에도 매년 70만명 안팎의 방문객이 줄을 이었고 '장미대선'이 있었던 2017년엔 다시 100만명을 넘겼다.

주말에 방문객이 몰리면서 마을 앞 봉하 들판 농로도 긴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농기계 이동을 못 하게 된 주민들이 초반엔 방문객과 실랑이를 벌이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점차 적응해갔다.

이 마을 승구봉(52) 이장은 "초창기엔 주민들이 방문객과 싸우기도 하고 방문객이 5월에 몰리는 것보다 연중 분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며 "지금은 주민들도 인식이 많이 바뀌어 추도식이 예정된 5월 주말엔 들에 나가지 않아도 되도록 대비를 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봉하마을을 방문하는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노 대통령 생가를 포함해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다.
'시민'이 되려던 대통령 귀향지…봉하마을 어떻게 바뀌었나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손님이 찾아오면 함께 거닐었던 봉화산 숲길은 '대통령의 길'로 이름 붙여져 1길과 2길이 만들어졌다.

마을 뒤 봉화산과 국내 최대 하천형 습지인 화포천, 경작지 채원, 학습장 벼리채, 봉하 들판 등 약 9만여 ㎡는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으로 가꿔졌다.

지난해 5월부터 개방된 대통령의 집은 온라인이나 현장접수를 마친 사람을 대상으로 매주 수∼일요일 제한적으로 공개한다.

국민참여 방식으로 모은 묘역 안 1만5천여 박석에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란 글들이 그대로 새겨져 추모객을 맞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8년가량 가건물 형태로 운영해온 대통령 추모의 집은 철거되고 노 전 대통령 기념관과 시민체험공간을 겸할 역사체험전시관(가칭) 공사가 최근 시작됐다.

진영읍을 지나 작은 산업단지를 거쳐 봉하마을로 들어서면 '여러분이 노무현입니다'라고 쓴 현수막과 노란 바람개비가 맞이한다.
'시민'이 되려던 대통령 귀향지…봉하마을 어떻게 바뀌었나
마을 안엔 음식점 3곳, 편의점과 카페·빵집 1곳씩이 생겼다.

봉하재단에서 운영하는 기념품 가게도 있고, 김해시에서 특산품 가게도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 귀향 11년, 서거 10주기를 맞은 봉하마을은 들뜸과 슬픔을 넘어 어제 시민들의 안식처이자 나들이 장소로 변해가고 있다.

2011년부터 봉하마을을 지키고 있는 노무현 재단 이원애 본부장은 "처음엔 추모객들이 마음이 아파 눈물도 흘리고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였다"며 "지금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젊어지고 나들이하듯 다녀가는 분위기로 바뀌어 오히려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단에서도 앞으로 역사체험관 준공 후 운영 외엔 마을 건너편 뱀산 중턱 노 전 대통령이 고시 공부를 하던 '마옥당'(摩玉堂)을 복원하는 정도 계획을 갖고 있다.

승구봉 이장은 "방문객들이 점차 줄겠지 생각했는데 날이 갈수록 늘어 놀랐다"며 "주민 입장에선 매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방문객들이 고맙고 편하게 머물도록 도움을 못 드려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