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최저임금위원회가 진짜 '독립기구' 되려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조직도 예산도 인력도 없는 최저임금위
적정한 권한 마련해주고 책임도 물어야
백승현 경제부 차장
적정한 권한 마련해주고 책임도 물어야
백승현 경제부 차장
“아마 국민 대부분은 최저임금위원회 조직이 제법 큰 줄 알 겁니다. 조직 운영 상황, 인원, 예산이 얼마인지 알려지면 깜짝 놀라겠죠.”
최근 “새 위원회에는 새 간판을 다는 게 맞다”며 사퇴를 공식화한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의 말이다. 류 위원장이 자진사퇴를 결행한 까닭은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추진해온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때문이다. 현재 단심 구조로 돼 있는 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해 더욱 충실하고 합리적인 최저임금을 결정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국회 공회전으로 법 개정은 무산됐고 내년 최저임금은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정하게 됐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30년 역사의 최저임금위를 개편하려 했던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공익위원들이 편향적인 데다 제대로 된 심의를 못해 최저임금을 너무 올렸다는 이유다. 최저임금위는 노·사·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노사 양측의 의견차가 너무 커 사실상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결정의 키를 쥐고 있다.
하지만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건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어느 공익위원이 소신을 내세우며 반기를 들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공익위원 9명은 모두 고용노동부 장관이 ‘선별’해 위촉한 사람이다.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하고, 정부가 이를 문제 삼아 기구 개편을 추진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배경은 다른 데 있다. 그동안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최저임금 논란이 벌어지면 “최저임금위는 독립기구”라고 항변해왔다.
그런데 그 독립기구의 현황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 최저임금위 사무국 직원은 총 8명으로 고용부 고위공무원인 상임위원을 제외한 실무인력은 7명이 전부다. 그나마 실무를 총괄하는 서기관은 최저임금위 소속이 아니라 고용부에서 임시로 파견한 공무원이다. 예산은 어떨까. 최저임금위의 2017년 예산은 4억4000만원, 지난해에는 200만원 늘어 4억4200만원이었다. 올해는 4억9900만원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은 회의에 참석하는 노·사·공익위원 수당과 용역비로 쓰인다. 비상근인 위원장은 직책급 월 135만원을 받는다. 이렇다 보니 정작 최저임금 심의에 필요한 각종 연구와 조사, 분석은 고용부 주도의 연구용역으로 때운다.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별도 의결기구가 아니라 고용부 소속 기관에 가깝다는 얘기다.
최저임금법(20조)에는 ‘사무국에 최저임금의 심의 등에 필요한 전문적인 사항을 조사·연구하게 하기 위하여 3명 이내의 연구위원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규정에 불과하다. 또 ‘최저임금 심의 외에 제도 발전을 위한 연구 및 건의를 해야 한다’는 법 조항(13조)도 있지만 “그야말로 법전에나 있는 이야기”라는 게 전직 관계자들의 말이다.
지금까지 최저임금위는 매년 3월 말 고용부 장관이 심의를 요청하면 2~3개월 모여 ‘한철장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저임금 수준이 높지 않아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는 더 이상 조직도 인력도 예산도 없는 최저임금위에 독립성 운운하며 뒤로 숨지 말고 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근로자 500만 명(최저임금 영향률 25%)의 임금을 겨우 5억원짜리 위원회에 맡겨서야 되겠는가. 권한이 있어야 책임도 따르는 법이다.
argos@hankyung.com
최근 “새 위원회에는 새 간판을 다는 게 맞다”며 사퇴를 공식화한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의 말이다. 류 위원장이 자진사퇴를 결행한 까닭은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추진해온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때문이다. 현재 단심 구조로 돼 있는 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해 더욱 충실하고 합리적인 최저임금을 결정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국회 공회전으로 법 개정은 무산됐고 내년 최저임금은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정하게 됐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30년 역사의 최저임금위를 개편하려 했던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공익위원들이 편향적인 데다 제대로 된 심의를 못해 최저임금을 너무 올렸다는 이유다. 최저임금위는 노·사·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노사 양측의 의견차가 너무 커 사실상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결정의 키를 쥐고 있다.
하지만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건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어느 공익위원이 소신을 내세우며 반기를 들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공익위원 9명은 모두 고용노동부 장관이 ‘선별’해 위촉한 사람이다.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하고, 정부가 이를 문제 삼아 기구 개편을 추진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배경은 다른 데 있다. 그동안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최저임금 논란이 벌어지면 “최저임금위는 독립기구”라고 항변해왔다.
그런데 그 독립기구의 현황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 최저임금위 사무국 직원은 총 8명으로 고용부 고위공무원인 상임위원을 제외한 실무인력은 7명이 전부다. 그나마 실무를 총괄하는 서기관은 최저임금위 소속이 아니라 고용부에서 임시로 파견한 공무원이다. 예산은 어떨까. 최저임금위의 2017년 예산은 4억4000만원, 지난해에는 200만원 늘어 4억4200만원이었다. 올해는 4억9900만원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은 회의에 참석하는 노·사·공익위원 수당과 용역비로 쓰인다. 비상근인 위원장은 직책급 월 135만원을 받는다. 이렇다 보니 정작 최저임금 심의에 필요한 각종 연구와 조사, 분석은 고용부 주도의 연구용역으로 때운다.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별도 의결기구가 아니라 고용부 소속 기관에 가깝다는 얘기다.
최저임금법(20조)에는 ‘사무국에 최저임금의 심의 등에 필요한 전문적인 사항을 조사·연구하게 하기 위하여 3명 이내의 연구위원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규정에 불과하다. 또 ‘최저임금 심의 외에 제도 발전을 위한 연구 및 건의를 해야 한다’는 법 조항(13조)도 있지만 “그야말로 법전에나 있는 이야기”라는 게 전직 관계자들의 말이다.
지금까지 최저임금위는 매년 3월 말 고용부 장관이 심의를 요청하면 2~3개월 모여 ‘한철장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저임금 수준이 높지 않아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는 더 이상 조직도 인력도 예산도 없는 최저임금위에 독립성 운운하며 뒤로 숨지 말고 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근로자 500만 명(최저임금 영향률 25%)의 임금을 겨우 5억원짜리 위원회에 맡겨서야 되겠는가. 권한이 있어야 책임도 따르는 법이다.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