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계절의 여왕과 고향의 추억
지나긴 했지만 부처님오신날(지난 5월 12일)이 되면 항상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젊은 시절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에 공부하러 들어갔던 기억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기는 친구다.

경북 김천의 해발 1111m 황악산 밑에 서기 418년 아도 화상이 건립한 직지사는 16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던 조선을 승병활동으로 구해낸 사명대사가 출가해 31세에 주지를 지낸 사찰이기도 하다.

절의 명칭이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됐다는 설, 아도 화상이 황악산 아래쪽을 가리키며 절을 지을 길지가 있다고 했다는 설,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마디로 측지해 붙여진 이름이란 설 등이 전해진다.

그 친구는 직지라는 말 자체가 불교의 본질을 잘 나타낸 것 아니겠냐며 미소 짓곤 했지만, 전국 최초로 템플스테이를 공식 개설한 곳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아쉬워하곤 했다. 이후 직지사는 명실상부한 템플스테이 대표 사찰로 성장했다.

같은 김천 지역에 있는 불령산(해발 1317m) 기슭에 통일신라 시절(859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청암사의 고적한 분위기도 좋지 않으냐고 반문해본다. 인현왕후가 폐위된 뒤 3년 동안 머물며 정성 어린 기도를 드린 결과 복위됐고, 복위된 왕후의 감사 편지가 보관된 곳이다.

부처님 경전 공부와 수행의 향기를 함께 쌓아가기에 좋은 환경과 여건을 갖추고 있다. 맑고 깨끗한 공기로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온화한 부처님 미소처럼 본래의 밝은 자기를 되찾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친구와의 대화는 김천의 상징 삼산이수(三山二水)의 하나인 감천 상류에 생긴 ‘핫’한 관광지로 이어졌다. 바로 부항댐이다. 원래 홍수 조절과 용수 확보를 위해 지어졌지만 256m 길이의 출렁다리와 줄 하나에 의지해 공중에서 활강하는 ‘짚 라인’이 생기면서 대표 관광지로 발전했다.

먹거리도 있다. 감문면 배시내의 석쇠불고기도 좋지만 친구는 지례 흑돼지가 최고라는 견해다. 조선시대부터 ‘지례돈(知禮豚)’이라는 토종 흑돼지가 명성을 날렸다. 쫀득한 육질은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후식으로 포도와 자두, 호두 등 지역 특산물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이리라.

독일 시인 실러는 ‘친구는 기쁨을 두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해준다’고 했다. 오는 주말, 편안한 마음으로 오래 묵은 친구와 함께 시원한 맥주 한잔씩 하며 고향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