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협약 '先입법 後비준' 뒤집은 정부…대화는 흉내만 내고 결국엔 공약대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논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파행을 거듭하다가 결국 불발에 그쳤다. 정부는 그 이후에도 ‘사회적 대화 계속’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정부가 22일 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 국회 제출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에 궁금증이 증폭되는 이유다.

ILO 협약 비준의 표면적 명분은 근로자 단결권 보호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핵심 내용은 실업자·해고자 노조활동,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공무원 노조 가입범위 확대 등 노동계 요구 사항들이다. 이런 노동계의 요구는 2017년 현 정부 대선 공약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반영됐다.

공약이행이 쉽지 않은 것은 ILO 협약 비준에 앞서 노동조합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데 있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한국 노사관계에 대한 경영계 우려와 반대를 넘어서야 하는 까닭에 간단하지가 않다. 정부가 그간 노사정 대화를 거치는 모양새를 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노사정 대화는 파행을 거듭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경사노위를 보이콧했다. ILO 협약을 논의하기 위해 경사노위에 설치한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마저 편파 진행 논란으로 공익위원 일부가 사퇴했다. 그 결과 논의는 불발에 그쳤다. 이후 정부는 경사노위에서 논의를 이어간다는 원칙적 입장만 되풀이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지난 20일 경사노위가 논의 종료를 공식화하자 이틀 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비준 카드를 꺼냈다. 대화는 절차에 불과했고 실제 목표(공약)대로 행동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비준동의안 국회 제출은 정부가 겉으로 내세워온 ‘선입법 후비준 원칙’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국내법과 국제조약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앞으로 법 적용에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크다. ILO 협약 조문 내용과 상충될 가능성이 있는 국내법 조항이 사전에 모두 개정되지 않으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법 개정이 비준동의안대로 추진되면 노사관계의 균형은 더욱 훼손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국회에 계류 중인 여당 발의안은 지난해 11월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마련됐다. 공익위원안은 ‘경영계 입장은 배제한 채 노동계에 치우쳤다’며 일부 공익위원이 사퇴했을 정도다.

노와 사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룰의 생명은 공정성과 균형이다. 노사정의 충분한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이를 조정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도록 헌법과 법률에 따라 책무와 권한을 부여받은 기관이 고용노동부고, 대화를 위해 설치된 것이 경사노위다.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라는 이유는 달았지만 국회로 떠넘긴다고 자신들의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