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 건물 1층.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 협약식’을 끝내고 나오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세 번째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금융규제 샌드박스 등 정책 현안을 묻기 위해서였다.

최 위원장은 질문에 답하던 중 발언의 방향을 갑자기 이재웅 쏘카 대표에게로 돌렸다. 그는 ‘타다’ 서비스로 택시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 대표를 “무례하고 이기적이다” “오만하다”는 표현을 쓰며 강하게 비판했다.

경제계에서는 최 위원장의 돌발 발언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장관급 인사가 감정 섞인 말로 기업가 개인을 비판한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 소관 분야도 아닌데 왜 이런 격한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했다. ‘개인적인 소신’이라는 견해부터 ‘그만큼 이 대표에 대한 정부 내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증거’라는 관측까지 다양했다.

이재웅 대표 작심 비판한 최 위원장

최 위원장은 이날 금융 분야 혁신 사업자를 돕겠다는 발언을 하던 중 “정부의 혁신 노력과 관련해 내가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다”며 운을 띄웠다. 그는 “(이 대표가) 택시업계에 대해서도 상당히 거친 언사를 내뱉고 있는데, 이건 너무 이기적이고 무례한 언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혁신 사업자들이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자칫 사회 전반적인 혁신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그간 이 대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와 택시업계를 계속해서 비판해왔다. 지난달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가업상속공제 사후 관리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을 두고 “지금은 기득권을 강화할 때가 아니라 혁신성장에 ‘올인’해도 될까 말까 할 때”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대표는 공유서비스 ‘타다’의 종료를 요구하는 택시업계와도 수개월째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은 “택시업계의 생태계를 위협한다”며 집회를 열었다. 지난 15일에는 한 택시기사가 분신해 사망하는 사고도 벌어졌다. 택시업계는 이후 더 강하게 이 대표를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는 글을 쓰며 맞섰다. 그는 “세상의 변화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타다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불안감을 조장하고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기업가 개인을 협박해서야…”

최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그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정부 내 이 대표에 대한 불만이 그만큼 쌓여왔다는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혁신사업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년 4월 총선에서 표심의 중심에 있는 택시업계를 자극해선 안 된다는 청와대의 기류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위원장의 날선 비판에 대한 경제계의 반응은 차갑다. 한 기업 관계자는 “규제당국인 금융위를 이끄는 최 위원장의 발언은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규제 칼날을 뽑겠다’는 협박으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을 압박해 경영활동이 더 어려워졌다는 기업인들의 불만에 불을 지폈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최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적절치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관료가 기업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정부가 규제로 기업을 압박하던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 “출마와 무관”

이찬진 포티스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댓글.
이찬진 포티스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댓글.
이 대표는 최 위원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즉시 페이스북에 의견을 밝혔다. 이 대표는 “이분(최 위원장)은 왜 이러시는 걸까요? 출마하시려나?”라는 말과 함께 “어찌 됐든 새겨듣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한글과컴퓨터 창업자인 이찬진 포티스 대표와 카풀업체 풀러스의 서영우 대표도 논란에 가세했다. 이찬진 대표는 페이스북 댓글에 “부총리님을 비판하면 상당히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거군요”라고 썼다. 서 대표도 “(최 위원장의) 강원도 출마설이 있다 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은 “이번 발언은 출마와 무관하다”며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처 방법을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

박신영/윤희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