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여전히 배울 것 많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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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도쿄 특파원
요즘에는 사용 빈도가 줄어든 듯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어 등 외국어로 쓰인 책을 흔히 ‘원서(原書)’로 부르곤 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유럽 언어로 저술된 책에 근원을 의미하는 ‘원(原)’자를 붙인 것은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년) 일본인이었다. ‘원어(原語)’라는 말도 이때 등장했다.
에도(江戶) 시대(1603~1867년)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그때까지 사용하던 토착 일본어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새로 받아들인 서양의 과학기술과 문화를 표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저명한 동양사학자 오카다 히데히로(岡田英弘)에 따르면 일본 사회는 유럽의 언어를 ‘원형(모델)’으로 삼아 새로운 어휘와 인공적인 문체를 만들어가며 변화에 대응해나갔다.
매력 잃은 '일본 모델'
19~20세기 일본은 서양을 모델로 삼아 국가 구조를 바꿨고 경제 시스템을 새로 일궜다. 해방 후 한국은 상당 부분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서구 모델에 따라 사회와 경제 발전의 길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앞선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그들이 개척한 기술과 지식을 값싸게 획득해 빠르고 효율적인 산업화를 이뤘다.
한때는 일본에서 성공한 상품이나 사업을 그대로 도입하면 한국에서 무난하게 성공할 수 있었다. 대기업 창업주들이 도쿄에서 신사업을 구상하는 것도 낯익은 풍경이었다.
지금도 일본에 있는 슈퍼마켓을 가보면 ‘박카스’ ‘새우깡’ ‘미원’ 같은 한국의 대표 식음료 제품과 너무 비슷하게 생긴 상품들이 널려 있어 깜짝 놀란다. 일본을 ‘원형’으로 삼아온 과거의 유산이다. 그때는 ‘일본의 현재는 20년 뒤 한국의 미래’라는 표현도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되곤 했다.
이런 사고방식이 급격히 설득력을 잃은 것은 2010년께부터다. 당시 삼성전자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의 9개 전자회사 영업이익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이익을 거둔 것은 ‘일본 모델’에 종지부를 찍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물건을 살 때마다 1엔짜리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풍경, 마치 1980년대 ‘종로서적’으로 돌아간 것인 양 서점에서 종이 커버로 책을 싸주는 모습은 옛 관습이 화석처럼 남은 ‘갈라파고스’ 사례로 희화화됐다.
반면교사 역할까지 버려서야
문제는 일본 모델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수 있는 점까지 한꺼번에 내다버린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거품 붕괴 후 장기간 경기불황에 시달렸던 일본의 경험은 여전히 참고할 점이 적지 않지만 도매금으로 구닥다리 취급을 하고 있다. 아니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고도성장기 때 수도권 외곽에 대대적으로 건설했다가 지금은 고령화로 텅 빈 도시가 된 신도시들, 기업 활력을 자극하고 투자를 촉진하기보다 복지 확대에 치중하다가 대량실업으로 ‘로스제네(잃어버린 세대)’만 양산한 경제정책, 서로를 ‘폭주(暴走)노인’ ‘(학력 저하의) 유토리 세대’라고 힐난했던 세대갈등 등은 오늘날 한국이 유심히 살펴야 할 모습들이다.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는 한국의 경제상황, 논란이 많은 신도시 건설 결정 과정을 보면 과거 일본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한 모습이다. 오히려 지금이 일본에 대한 공부가 가장 절실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kimdw@hankyung.com
에도(江戶) 시대(1603~1867년)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그때까지 사용하던 토착 일본어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새로 받아들인 서양의 과학기술과 문화를 표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저명한 동양사학자 오카다 히데히로(岡田英弘)에 따르면 일본 사회는 유럽의 언어를 ‘원형(모델)’으로 삼아 새로운 어휘와 인공적인 문체를 만들어가며 변화에 대응해나갔다.
매력 잃은 '일본 모델'
19~20세기 일본은 서양을 모델로 삼아 국가 구조를 바꿨고 경제 시스템을 새로 일궜다. 해방 후 한국은 상당 부분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서구 모델에 따라 사회와 경제 발전의 길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앞선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그들이 개척한 기술과 지식을 값싸게 획득해 빠르고 효율적인 산업화를 이뤘다.
한때는 일본에서 성공한 상품이나 사업을 그대로 도입하면 한국에서 무난하게 성공할 수 있었다. 대기업 창업주들이 도쿄에서 신사업을 구상하는 것도 낯익은 풍경이었다.
지금도 일본에 있는 슈퍼마켓을 가보면 ‘박카스’ ‘새우깡’ ‘미원’ 같은 한국의 대표 식음료 제품과 너무 비슷하게 생긴 상품들이 널려 있어 깜짝 놀란다. 일본을 ‘원형’으로 삼아온 과거의 유산이다. 그때는 ‘일본의 현재는 20년 뒤 한국의 미래’라는 표현도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되곤 했다.
이런 사고방식이 급격히 설득력을 잃은 것은 2010년께부터다. 당시 삼성전자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의 9개 전자회사 영업이익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이익을 거둔 것은 ‘일본 모델’에 종지부를 찍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물건을 살 때마다 1엔짜리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풍경, 마치 1980년대 ‘종로서적’으로 돌아간 것인 양 서점에서 종이 커버로 책을 싸주는 모습은 옛 관습이 화석처럼 남은 ‘갈라파고스’ 사례로 희화화됐다.
반면교사 역할까지 버려서야
문제는 일본 모델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수 있는 점까지 한꺼번에 내다버린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거품 붕괴 후 장기간 경기불황에 시달렸던 일본의 경험은 여전히 참고할 점이 적지 않지만 도매금으로 구닥다리 취급을 하고 있다. 아니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고도성장기 때 수도권 외곽에 대대적으로 건설했다가 지금은 고령화로 텅 빈 도시가 된 신도시들, 기업 활력을 자극하고 투자를 촉진하기보다 복지 확대에 치중하다가 대량실업으로 ‘로스제네(잃어버린 세대)’만 양산한 경제정책, 서로를 ‘폭주(暴走)노인’ ‘(학력 저하의) 유토리 세대’라고 힐난했던 세대갈등 등은 오늘날 한국이 유심히 살펴야 할 모습들이다.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는 한국의 경제상황, 논란이 많은 신도시 건설 결정 과정을 보면 과거 일본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한 모습이다. 오히려 지금이 일본에 대한 공부가 가장 절실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