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저가 전기버스 '놀이터' 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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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배터리는 中서 보조금 못 받는데
한국은 3억씩 지급…시장 절반 뺏겨
한국은 3억씩 지급…시장 절반 뺏겨
한국에서 중국산 저가 전기버스가 ‘질주’하고 있다. 대당 최대 3억원에 달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등에 업고서다. 한국산 배터리를 얹은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지 않는 중국 정부의 노골적 ‘차별 정책’과 대조적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공급된 전기버스는 140대(등록 기준)로 집계됐다. 이 중 매그넘(중퉁자동차), e버스-7(비야디), 하이퍼스(하이거) 등 중국산 전기버스가 62대(44.2%)였다. 2016년엔 한 대도 팔리지 않은 중국산 전기버스는 2017년(25대)부터 판매량이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더 급증할 전망이다. 한국 업체들이 생산한 모델(4억~5억원)보다 1억원 이상 싼 3억3000만원대에 내놔 한국 시장을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 시내버스업체들에 전기버스를 팔 때 정부(약 1억원)와 지자체(약 1억원)에서 보조금을 받는다. 저상버스(장애인을 배려해 차체 바닥을 낮게 제작한 버스)는 920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로 챙긴다. 3000만원 안팎에 중국산 전기버스를 구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에선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돼 제대로 사업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중소업체들은 고사 직전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과 교수는 “배터리 용량에 따라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현 보조금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며 “부품 국산화율을 따지거나 구매 때 최소 부담금을 설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3억 보조금 받으면 中 전기버스 3000만원…韓 중소업체 '고사 위기'
국내 한 전기버스 제조업체는 얼마 전 공급계약을 맺은 시내버스업체로부터 황당한 통보를 받은 뒤 끙끙 앓고 있다. 중국 업체가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했으니 가격을 조정하자는 내용이었다. 차 가격을 5000만원 이상 깎아주지 않으면 계약을 깨고 중국 업체와 거래하겠다고 했다.
값싼 중국산 전기버스가 몰려오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 판매된 전기버스 140대(등록 기준) 중 62대(44.2%)가 중국산이었다. 2017년(25대)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국산 전기버스 판매량은 74대에서 68대로 줄었다. 업계에서는 획일적인 보조금 제도 탓에 중국산 저가 전기버스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일정 요건만 갖춰 신청하면 차량 가격과 무관하게 일괄적으로 3억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주다 보니 3000만~4000만원에 중국산 전기버스를 구입할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다. 국내 업체들이 고사 위기에 내몰린 이유다.
한국 전기버스 시장 장악한 중국
2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중퉁자동차는 한국시장에서 전기버스 30대를 팔았다. 현대자동차(54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중국 회사인 비야디(BYD)와 하이거도 각각 20대, 12대의 전기버스를 판매했다. 중국 브랜드는 2016년까지만 해도 한국에 전기버스를 한 대도 팔지 못했지만 2년 만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중국 전기버스가 약진한 이유는 가격 경쟁력에 있다. 한국 전기버스보다 1억원 이상 싸기 때문이다. 국산 전기버스 가격은 4억~5억원 수준이지만, 중국산은 3억원 안팎이다.
값싼 중국산 전기버스의 공습에 한국 중소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에디슨모터스의 전기버스 판매량은 2017년 52대에서 지난해 15대로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전기버스는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치고 들어오는 중국 전기버스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자동차가 중형 저상전기버스 그린타운850을 앞세워 연내 한국에 진출할 계획이어서 이런 현상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둥펑자동차도 조만간 16인승 중형 전기버스를 한국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중국 자동차회사들이 한국 전기승용차 시장도 넘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둥펑자동차는 연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를 한국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자동차도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잇달아 전기 승용차를 선보이고 있다.
전기버스 보조금 절반 가져간 중국차
중국 전기버스의 약진에는 한국 정부의 보조금 제도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친환경차 보급을 지원하기 위해 전기버스를 구매하는 업체에 7600만~1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최대 1억5000만원의 보조금을 별도로 준다. 서울과 인천 등은 최대 1억원, 대구는 최대 1억4000만원, 충북 청주는 1억5000만원을 지급한다. 버스업체가 저상버스(차체 바닥이 낮은 버스)를 구입하면 920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전기버스를 구매할 때 최대 3억원가량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3억원대 초반인 중국산 전기버스가 보조금을 받으면 판매가격이 3000만~4000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국산 전기버스(보조금 받으면 1억~1억5000만원)는 물론 디젤 버스(약 1억2000만원) 압축천연가스(CNG)버스(보조금 받으면 약 1억원)보다 훨씬 저렴하다. 한 시내버스업체 관계자는 “3000만원에 전기버스를 구입할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느냐”며 “버스업체들이 중국 제품을 1순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조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현행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배터리 용량과 이동거리당 에너지 소모량 등에 따라 보조금 지급 규모가 달라진다고 하지만 차이가 크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성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저가 전기버스와 고성능 전기버스의 보조금 차이가 2000만~3000만원에 불과하다”며 “판매가가 1억원 이상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보조금 차이가 무의미해진다”고 꼬집었다.
보조금을 적용한 가격이 기존 내연기관 및 CNG 버스보다 낮아지지 않도록 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과 교수는 “전기버스 보조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며 “전기버스 가격이 3000만원 수준으로 내려갈 정도로 보조금을 주는 건 세금 낭비인 만큼 보조금 상한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제도 개선에 들어갔다. 정부 관계자는 “전기버스 보조금 지급 기준에 대한 업계 비판을 잘 알고 있으며 새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창민/도병욱/박상용/구은서 기자 cmjang@hankyung.com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공급된 전기버스는 140대(등록 기준)로 집계됐다. 이 중 매그넘(중퉁자동차), e버스-7(비야디), 하이퍼스(하이거) 등 중국산 전기버스가 62대(44.2%)였다. 2016년엔 한 대도 팔리지 않은 중국산 전기버스는 2017년(25대)부터 판매량이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더 급증할 전망이다. 한국 업체들이 생산한 모델(4억~5억원)보다 1억원 이상 싼 3억3000만원대에 내놔 한국 시장을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 시내버스업체들에 전기버스를 팔 때 정부(약 1억원)와 지자체(약 1억원)에서 보조금을 받는다. 저상버스(장애인을 배려해 차체 바닥을 낮게 제작한 버스)는 920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로 챙긴다. 3000만원 안팎에 중국산 전기버스를 구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에선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돼 제대로 사업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중소업체들은 고사 직전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과 교수는 “배터리 용량에 따라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현 보조금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며 “부품 국산화율을 따지거나 구매 때 최소 부담금을 설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3억 보조금 받으면 中 전기버스 3000만원…韓 중소업체 '고사 위기'
국내 한 전기버스 제조업체는 얼마 전 공급계약을 맺은 시내버스업체로부터 황당한 통보를 받은 뒤 끙끙 앓고 있다. 중국 업체가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했으니 가격을 조정하자는 내용이었다. 차 가격을 5000만원 이상 깎아주지 않으면 계약을 깨고 중국 업체와 거래하겠다고 했다.
값싼 중국산 전기버스가 몰려오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 판매된 전기버스 140대(등록 기준) 중 62대(44.2%)가 중국산이었다. 2017년(25대)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국산 전기버스 판매량은 74대에서 68대로 줄었다. 업계에서는 획일적인 보조금 제도 탓에 중국산 저가 전기버스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일정 요건만 갖춰 신청하면 차량 가격과 무관하게 일괄적으로 3억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주다 보니 3000만~4000만원에 중국산 전기버스를 구입할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다. 국내 업체들이 고사 위기에 내몰린 이유다.
한국 전기버스 시장 장악한 중국
2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중퉁자동차는 한국시장에서 전기버스 30대를 팔았다. 현대자동차(54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중국 회사인 비야디(BYD)와 하이거도 각각 20대, 12대의 전기버스를 판매했다. 중국 브랜드는 2016년까지만 해도 한국에 전기버스를 한 대도 팔지 못했지만 2년 만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중국 전기버스가 약진한 이유는 가격 경쟁력에 있다. 한국 전기버스보다 1억원 이상 싸기 때문이다. 국산 전기버스 가격은 4억~5억원 수준이지만, 중국산은 3억원 안팎이다.
값싼 중국산 전기버스의 공습에 한국 중소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에디슨모터스의 전기버스 판매량은 2017년 52대에서 지난해 15대로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전기버스는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치고 들어오는 중국 전기버스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자동차가 중형 저상전기버스 그린타운850을 앞세워 연내 한국에 진출할 계획이어서 이런 현상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둥펑자동차도 조만간 16인승 중형 전기버스를 한국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중국 자동차회사들이 한국 전기승용차 시장도 넘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둥펑자동차는 연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를 한국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자동차도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잇달아 전기 승용차를 선보이고 있다.
전기버스 보조금 절반 가져간 중국차
중국 전기버스의 약진에는 한국 정부의 보조금 제도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친환경차 보급을 지원하기 위해 전기버스를 구매하는 업체에 7600만~1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최대 1억5000만원의 보조금을 별도로 준다. 서울과 인천 등은 최대 1억원, 대구는 최대 1억4000만원, 충북 청주는 1억5000만원을 지급한다. 버스업체가 저상버스(차체 바닥이 낮은 버스)를 구입하면 920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전기버스를 구매할 때 최대 3억원가량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3억원대 초반인 중국산 전기버스가 보조금을 받으면 판매가격이 3000만~4000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국산 전기버스(보조금 받으면 1억~1억5000만원)는 물론 디젤 버스(약 1억2000만원) 압축천연가스(CNG)버스(보조금 받으면 약 1억원)보다 훨씬 저렴하다. 한 시내버스업체 관계자는 “3000만원에 전기버스를 구입할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느냐”며 “버스업체들이 중국 제품을 1순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조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현행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배터리 용량과 이동거리당 에너지 소모량 등에 따라 보조금 지급 규모가 달라진다고 하지만 차이가 크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성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저가 전기버스와 고성능 전기버스의 보조금 차이가 2000만~3000만원에 불과하다”며 “판매가가 1억원 이상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보조금 차이가 무의미해진다”고 꼬집었다.
보조금을 적용한 가격이 기존 내연기관 및 CNG 버스보다 낮아지지 않도록 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과 교수는 “전기버스 보조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며 “전기버스 가격이 3000만원 수준으로 내려갈 정도로 보조금을 주는 건 세금 낭비인 만큼 보조금 상한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제도 개선에 들어갔다. 정부 관계자는 “전기버스 보조금 지급 기준에 대한 업계 비판을 잘 알고 있으며 새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창민/도병욱/박상용/구은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