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월마 지음 / 배현 옮김
다시봄 / 540쪽 /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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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가 처음부터 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승객과 화물을 쌍방향으로 실어 나른 기관차와 철도의 첫 사례는 1830년 9월 개통한 영국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다. 하지만 이미 16세기부터 유럽 여러 곳의 탄광에서 나무로 제작한 궤도 위에 바퀴를 얹어 짐을 실어 날랐다. 쇠로 만든 레일 위에 증기기관이 이끄는 기관차를 얹으면서 비로소 기차가 탄생했다. 그러니 산업혁명을 선도한 영국에서 철도가 먼저 발달한 것은 당연했다.
다소간의 시차는 있지만 철도는 유럽과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됐다. 영국에선 민간이 철도 건설을 주도한 데 비해 유럽에선 국가가 적극 개입했다. 처음부터 철도가 국가기반 시설로서 매우 중요하며 경제 전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한 까닭이다. 철도가 나라를 통합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철도가 보통 수도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놓였기 때문이다. 1830년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벨기에는 철도망 구축을 국가적 일체감 형성의 계기로 삼았다.
독일은 바이에른왕국에서 1835년 뉘른베르크와 퓌르트 사이에 철도를 놓은 것을 필두로 지방국가들이 일제히 철도를 건설했다. 특히 지방국가들을 관통하는 라이프치히~드레스덴 철도는 지방국가들 간의 무역을 활성화시켜 경제발전을 이끌었고 마침내 독일연방 탄생의 촉매제가 됐다. 미국, 시베리아, 인도, 아프리카 등 대륙을 관통하는 철도도 속속 놓였다. 첼랴빈스크에서 동쪽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으로 동시에 공사를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경우 공사가 한창일 땐 8만9000명이 동시에 일했을 만큼 거대 프로젝트였다.
이제 철도가 가지 못하는 곳은 거의 없다. 안데스 산맥을 통과하는 페루중앙철도, 볼리비아의 우유니사막을 가로지르는 철도, 평균 해발고도가 4500m에 이르는 중국의 칭짱철도….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철도는 산맥과 협곡, 폭포를 가로질렀고, 세계 각국의 소도시를 선으로 연결하며 삶 속에 파고들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철도의 발전 과정뿐만 아니라 철도가 인간의 삶과 경제, 정치, 외교, 전쟁 등에 미친 광범위한 영향이다. 문화사, 사회사의 관점에서 철도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철도는 농업경제를 산업경제로 바꿔놓았다. 대규모 제조업이 가능해졌고, 산업혁명이 전 세계에 걸쳐 이뤄졌다.
도시에서 신선한 우유와 채소를 매일 먹을 수 있는 것도 철도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해안 마을에서나 먹을 수 있던 피시앤칩스가 영국의 대표 요리가 된 건 신선한 생선을 야간열차에 싣고 내륙의 도시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도시가 확대되고 근교도시가 발달한 것도 철도가 있어서였다. 철도로 인해 19세기 이후 관광산업이 대규모로 발달했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철도를 민간에 맡기기엔 너무나 중요하다고 여겨 가장 먼저 이를 국유화했다.
병력과 무기를 효율적으로 운송한 결과 전쟁의 규모가 전례 없이 커진 것은 철도 발달의 어두운 면이다. 험준한 곳에 철로를 놓느라 혹사당하며 무더위와 풍토병, 사고 등으로 죽어간 노동자들의 희생도 기억해야 한다.
승용차 보급이 늘면서 한때 퇴조했던 철도는 일본의 신칸센을 필두로 한 고속철도의 등장과 확산으로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저자는 혼잡한 도로, 치솟는 연료비 등으로 철도가 곧 교통수단의 중심에 다시 설 것이라고 낙관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