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관계 악화 엎친데 정보유출 파문 덮쳐…'사면초가'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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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강해이에 초대형 '보안 사고'
한·일 '징용 판결' 최악 대치
한·일 '징용 판결' 최악 대치
“지금 외교부가 처해 있는 상황은 여러분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몇 배나 더 엄중합니다.” 24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리셉션홀. 취임사를 읽는 조세영 외교부 신임 제1차관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굳은 표정은 취임사를 마칠 때까지 이어졌다. 이날 장내 분위기는 무거웠다. 취임식의 축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교부 직원 100여 명은 긴장한 얼굴로 조 차관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외교부가 창설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외교 관료가 유출시키는 보안 사고로 한·미 외교는 살얼음판 위에 놓였다. 대일 외교는 과거사 논쟁에 발목 잡혀 있다. 미국의 ‘반(反)화웨이’ 참전 요구가 현실화되면서 대중 관계 역시 일촉즉발 상황이다. ‘3강 외교’가 흔들리는 와중에 청와대와의 갈등설은 갈수록 증폭되는 양상이다.
한· 미 동맹에 악영향 우려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 외교의 근간이 위태롭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미 정상 간 통화 유출은 동맹으로서 양국 간 신뢰를 깨버린 사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 시선도 곱지 않다. 워싱턴DC 관가에선 한국 외교관들과의 만남을 기피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사건이 보도된 다음 미국 외교관들이 한국 외교관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미국 측에 개인의 일탈이라고 설명해도 쉽게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대중 외교는 다시 화약고가 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상대로 전면적 규제 조치에 착수하면서 한국에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최근 우리 정부에 “중국이 부당하게 영유권을 주장하며 항행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서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운신의 폭이 좁다. 그나마 소통의 기회로 봤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도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제2의 사드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한·일 관계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80분간의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제 강제동원에 관한 대법원 배상 판결 문제를 해결할 중재위원회 개최 등 최근 현안에 대해 한·일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여러 차례에 걸친 협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외교부가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하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국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이해 못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일본 측이 노골적으로 ‘외교부 패싱’을 주장한 셈이다.
잇따른 기강해이 사고 논란
3강 외교가 최악의 위기에 처한 데는 청와대와 외교부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주미대사관 간부급 직원 K씨가 고교 선배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내용을 유출한 것은 과거 동맹파와 자주파 간 갈등을 연상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3급 비밀을 청와대 근무 경험까지 있는 경력 20여 년의 베테랑 외교관이 발설했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청와대와 외교부 사이의 갈등이 표출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외교부 내에 정권교체를 아직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 등 대통령이 임명한 특임대사를 내부 직원들의 투서를 빌미 삼아 중징계에 처하기도 했다. 삿포로 총영사를 비롯해 현 정부에서 임명된 특임대사 중 3명이 ‘갑질’을 이유로 옷을 벗거나 벗을 위기다.
조 차관이 긴급 투입된 것도 외교부의 조직 이완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차관은 이날 취임식에서 “최근 해외 공관에서 국가 기밀을 다루는 고위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기강해이와 범법행위가 적발됐다”며 “외교부를 믿고 아껴주신 국민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린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했다. 조현 전 외교부 제1차관도 전날 이임식에서 “최근 외교부에서 발생한 일련의 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왔다”며 “자책감이 든다”는 소회를 남겼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외교부가 창설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외교 관료가 유출시키는 보안 사고로 한·미 외교는 살얼음판 위에 놓였다. 대일 외교는 과거사 논쟁에 발목 잡혀 있다. 미국의 ‘반(反)화웨이’ 참전 요구가 현실화되면서 대중 관계 역시 일촉즉발 상황이다. ‘3강 외교’가 흔들리는 와중에 청와대와의 갈등설은 갈수록 증폭되는 양상이다.
한· 미 동맹에 악영향 우려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 외교의 근간이 위태롭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미 정상 간 통화 유출은 동맹으로서 양국 간 신뢰를 깨버린 사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 시선도 곱지 않다. 워싱턴DC 관가에선 한국 외교관들과의 만남을 기피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사건이 보도된 다음 미국 외교관들이 한국 외교관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미국 측에 개인의 일탈이라고 설명해도 쉽게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대중 외교는 다시 화약고가 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상대로 전면적 규제 조치에 착수하면서 한국에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최근 우리 정부에 “중국이 부당하게 영유권을 주장하며 항행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서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운신의 폭이 좁다. 그나마 소통의 기회로 봤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도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제2의 사드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한·일 관계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80분간의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제 강제동원에 관한 대법원 배상 판결 문제를 해결할 중재위원회 개최 등 최근 현안에 대해 한·일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여러 차례에 걸친 협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외교부가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하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국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이해 못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일본 측이 노골적으로 ‘외교부 패싱’을 주장한 셈이다.
잇따른 기강해이 사고 논란
3강 외교가 최악의 위기에 처한 데는 청와대와 외교부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주미대사관 간부급 직원 K씨가 고교 선배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내용을 유출한 것은 과거 동맹파와 자주파 간 갈등을 연상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3급 비밀을 청와대 근무 경험까지 있는 경력 20여 년의 베테랑 외교관이 발설했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청와대와 외교부 사이의 갈등이 표출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외교부 내에 정권교체를 아직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 등 대통령이 임명한 특임대사를 내부 직원들의 투서를 빌미 삼아 중징계에 처하기도 했다. 삿포로 총영사를 비롯해 현 정부에서 임명된 특임대사 중 3명이 ‘갑질’을 이유로 옷을 벗거나 벗을 위기다.
조 차관이 긴급 투입된 것도 외교부의 조직 이완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차관은 이날 취임식에서 “최근 해외 공관에서 국가 기밀을 다루는 고위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기강해이와 범법행위가 적발됐다”며 “외교부를 믿고 아껴주신 국민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린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했다. 조현 전 외교부 제1차관도 전날 이임식에서 “최근 외교부에서 발생한 일련의 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왔다”며 “자책감이 든다”는 소회를 남겼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