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고 실려가는 경찰…공권력 짓밟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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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매일 4명꼴 병원行
경찰관 매일 4명꼴 병원行
집회 장소와 사건 현장에서 경찰 공권력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시민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관들이 오히려 시위대와 취객, 용의자 등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근무 중 부상한 경찰관은 1689명으로 전년(1597명)보다 6.4% 증가했다. 하루평균 네 명 이상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또 경찰관들의 공권력을 침해하면서 공무집행방해죄로 검거된 사람은 2017년 1만2880명에 달했다.
이런 문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벌이는 과격 시위와 조직폭력배를 검거하는 등의 강력사건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서울 대림동 여경사건에서 보듯 취객을 귀가시키는 상황에서 경찰관의 뺨을 때리거나 신체 위협 행위를 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한 현직 경찰관은 시민들의 폭행에 못 견뎌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3년간 근무 중 20번 넘게 맞았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경찰관 폭행이 빈번한 이유는 처벌 수위가 낮은 것과 관계가 있다. 공무집행방해로 입건된 피의자가 구속된 비율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반면 범죄가 벌어지는 상황이라도 과잉 진압 논란이 일면 현장 진압에 나선 경찰관은 징계 등의 처벌과 민사상 책임까지 져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민주노총 폭력사건에서 보듯이 수십 명이 체포돼도 기소되는 사람은 한두 명”이라며 “경찰보호법을 따로 제정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툭하면 뺨맞고 욕먹는 경찰…"공권력 도전엔 강력 대응해야"
지난 22일 서울 계동 현대중공업 앞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소속 노조원들의 집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에 반대하기 위해 1000여 명의 노조원이 집결했고, 일부 조합원이 현대 사옥 진입을 시도하면서 건물 입구를 지키던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다. 시위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 중 36명은 손목을 다치고 치아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 체포된 조합원 중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 과격 시위를 한 조합원 12명이 공무집행방해와 집회시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됐지만 10명은 혐의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약 4시간 만에 석방됐다.
“근무 중 매맞지 않게 해달라”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권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현직 경찰관의 청원이 올라왔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20대 남자 경찰관이라는 작성자는 “지난 3년간 근무하며 술 취한 시민들에게 스무 번 넘게 맞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욕을 듣는다”며 “경찰관 모욕죄를 신설해 강력하게 처벌하고, 술에 취했으면 두 배로 가중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최근 온라인 영상이 퍼지면서 논란이 됐던 ‘대림동 여경’ 사건도 경찰관이 폭행을 당하지 않으면 대응할 수 없는 현실에서 시작됐다. 현장에 출동한 여경이 술에 취한 시민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소극적인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난무했다.
하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경찰 공권력 추락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찰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술에 취한 중국 동포 허모씨는 경찰관 뺨을 망설임 없이 때렸다. 폭행이 있기 전까지 경찰들은 대화로 허씨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경찰 내 여경들로 구성된 학습모임 ‘경찰젠더연구회’는 “이 사건은 경찰관에게 거리낌없이 욕을 하고, 뺨을 때리고, 몸을 밀쳐 공무집행을 방해한 범죄”라며 “대한민국에 만연한 공권력 경시풍조에 대한 경종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대에 근무하는 한 경위는 “현장에 출동해 전자충격기(테이저 건) 삼단봉 등의 진압무기를 사용했다가 과잉 진압으로 몰릴 경우 내부 감사는 물론 민형사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며 “일선 경찰은 과잉 진압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맞고 나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수동적 공권력의 한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공정하고 엄격한 법 집행이 필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관 폭행 땐 전자충격기 사용이 가능하다는 등 물리력 행사의 규칙을 제정한 당일에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경찰을 폭행했지만 경찰 대응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며 “시민들이 정권의 성향에 따라 공권력이 특정 단체 앞에서 약해진다는 생각을 가지면 당연히 공권력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현직 국회의원도 폴리스라인(질서유지선)을 넘으면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해 수갑을 채우고, 법 집행 요원에 대한 폭력 혐의는 구속돼 심사를 받는 등 처벌이 엄격하다”며 “한국에서는 공무집행을 방해하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지만 법원에서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경우가 다수”라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에서처럼 공권력 도전에는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검거 대상이 칼을 꺼내는 등 저항 행위를 하고 난 뒤에야 경찰이 대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수동적 공권력’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미국은 총기 소유가 가능한 국가임을 감안하더라도 경찰이 손을 들라는 등 지시를 했을 때 이에 응하지 않으면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관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며 “미국이라면 대림동처럼 경찰관의 검문 요구에 중국 동포가 칼을 꺼내 찌르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순신/노유정 기자 soonsin2@hankyung.com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근무 중 부상한 경찰관은 1689명으로 전년(1597명)보다 6.4% 증가했다. 하루평균 네 명 이상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또 경찰관들의 공권력을 침해하면서 공무집행방해죄로 검거된 사람은 2017년 1만2880명에 달했다.
이런 문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벌이는 과격 시위와 조직폭력배를 검거하는 등의 강력사건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서울 대림동 여경사건에서 보듯 취객을 귀가시키는 상황에서 경찰관의 뺨을 때리거나 신체 위협 행위를 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한 현직 경찰관은 시민들의 폭행에 못 견뎌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3년간 근무 중 20번 넘게 맞았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경찰관 폭행이 빈번한 이유는 처벌 수위가 낮은 것과 관계가 있다. 공무집행방해로 입건된 피의자가 구속된 비율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반면 범죄가 벌어지는 상황이라도 과잉 진압 논란이 일면 현장 진압에 나선 경찰관은 징계 등의 처벌과 민사상 책임까지 져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민주노총 폭력사건에서 보듯이 수십 명이 체포돼도 기소되는 사람은 한두 명”이라며 “경찰보호법을 따로 제정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툭하면 뺨맞고 욕먹는 경찰…"공권력 도전엔 강력 대응해야"
지난 22일 서울 계동 현대중공업 앞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소속 노조원들의 집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에 반대하기 위해 1000여 명의 노조원이 집결했고, 일부 조합원이 현대 사옥 진입을 시도하면서 건물 입구를 지키던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다. 시위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 중 36명은 손목을 다치고 치아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 체포된 조합원 중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 과격 시위를 한 조합원 12명이 공무집행방해와 집회시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됐지만 10명은 혐의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약 4시간 만에 석방됐다.
“근무 중 매맞지 않게 해달라”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권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현직 경찰관의 청원이 올라왔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20대 남자 경찰관이라는 작성자는 “지난 3년간 근무하며 술 취한 시민들에게 스무 번 넘게 맞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욕을 듣는다”며 “경찰관 모욕죄를 신설해 강력하게 처벌하고, 술에 취했으면 두 배로 가중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최근 온라인 영상이 퍼지면서 논란이 됐던 ‘대림동 여경’ 사건도 경찰관이 폭행을 당하지 않으면 대응할 수 없는 현실에서 시작됐다. 현장에 출동한 여경이 술에 취한 시민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소극적인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난무했다.
하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경찰 공권력 추락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찰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술에 취한 중국 동포 허모씨는 경찰관 뺨을 망설임 없이 때렸다. 폭행이 있기 전까지 경찰들은 대화로 허씨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경찰 내 여경들로 구성된 학습모임 ‘경찰젠더연구회’는 “이 사건은 경찰관에게 거리낌없이 욕을 하고, 뺨을 때리고, 몸을 밀쳐 공무집행을 방해한 범죄”라며 “대한민국에 만연한 공권력 경시풍조에 대한 경종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대에 근무하는 한 경위는 “현장에 출동해 전자충격기(테이저 건) 삼단봉 등의 진압무기를 사용했다가 과잉 진압으로 몰릴 경우 내부 감사는 물론 민형사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며 “일선 경찰은 과잉 진압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맞고 나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수동적 공권력의 한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공정하고 엄격한 법 집행이 필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관 폭행 땐 전자충격기 사용이 가능하다는 등 물리력 행사의 규칙을 제정한 당일에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경찰을 폭행했지만 경찰 대응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며 “시민들이 정권의 성향에 따라 공권력이 특정 단체 앞에서 약해진다는 생각을 가지면 당연히 공권력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현직 국회의원도 폴리스라인(질서유지선)을 넘으면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해 수갑을 채우고, 법 집행 요원에 대한 폭력 혐의는 구속돼 심사를 받는 등 처벌이 엄격하다”며 “한국에서는 공무집행을 방해하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지만 법원에서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경우가 다수”라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에서처럼 공권력 도전에는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검거 대상이 칼을 꺼내는 등 저항 행위를 하고 난 뒤에야 경찰이 대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수동적 공권력’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미국은 총기 소유가 가능한 국가임을 감안하더라도 경찰이 손을 들라는 등 지시를 했을 때 이에 응하지 않으면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관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며 “미국이라면 대림동처럼 경찰관의 검문 요구에 중국 동포가 칼을 꺼내 찌르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순신/노유정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