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최근 사건 현장에서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을 정한 행동 규칙을 오는 1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속수무책으로 공무집행 방해 및 공권력 침해를 당하고 있는 데 따른 대응책이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숙지하고 현장에서 적절히 대응하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란 지적이다.

지난 22일 경찰청은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을 내놨다. 현장 경찰관의 주관적인 판단에만 의존하지 않고 공무집행방해 행위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그간 경찰은 폭행을 당하더라도 물리력 행사를 최소한도 범위 내로 국한하면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새 지침에 따르면 용의자의 폭력 정도를 5단계로 나누고 이에 대응하는 경찰의 물리력 수준도 5단계로 세분화했다. 경찰의 뺨을 때린 용의자는 ‘폭력적 공격’ 단계에 해당한다. 앞으로는 경찰이 전자충격기 및 경찰봉을 사용해 용의자를 제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일선 경찰관은 “구체적인 매뉴얼이 마련되면서 앞으로는 현장에서 경찰관들의 책임과 권한이 더욱 명확해졌다”며 “현장에서 공권력 침해 상황이나 혼란 등도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응 단계가 지나치게 세분화돼 경찰들이 이를 숙지하고 현장에서 적용하기 복잡하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사건 현장의 긴박함을 고려할 때 경찰이 대치 중인 범인의 폭행 수준을 5단계로 나눠 판단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경찰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현장 상황이 매뉴얼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며 “복잡한 규칙이 오히려 현장에서 혼란을 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용의자의 폭행 수준에 따라 수동적으로 경찰이 대응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경찰이 전자충격기와 경찰봉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용의자의 폭력적 공격 단계에서다. 이미 경찰이 주먹, 발 등으로 폭행을 당한 이후에야 다른 도구를 물리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 서초구 지역 파출소에 근무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해당 매뉴얼에서는 용의자에게 폭행당하는 상황이 전제돼 경찰관이 폭행당하는 사례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권총은 마지막 단계인 ‘치명적 공격’ 수준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이 단계는 용의자가 총 또는 망치 등을 이용하거나 목을 조르는 등 경찰관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를 경우다.

일부 전문가는 경찰이 행사하는 물리력 대신 경찰 인력 보호에 초점을 두고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물리력 사용보다 집회 등 폭행이 예상될 수 있는 현장에 놓인 경찰을 위한 보호장비를 충분히 구비해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