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26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수십년간 유럽 정치의 중심 세력이던 중도 좌·우파 정당이 크게 퇴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반(反)난민, 반유럽연합(EU) 등을 내세운 극우 포퓰리즘 정당과 친환경·좌파 녹색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과거와 달리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표를 행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활짝 웃는 프랑스 극우정당 르펜 대표 >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성향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르펜 대표가 26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선거 승리 소감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활짝 웃는 프랑스 극우정당 르펜 대표 >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성향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르펜 대표가 26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선거 승리 소감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7일 EU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도 우파 성향인 유럽국민당(EPP)이 전체 유럽의회 의석 751석 중 178석을 얻어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어 중도 좌파 성향인 유럽사회당(S&D)이 147석을 확보해 제2당을 차지할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두 당 모두 현재 의석에서 40석가량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두 당의 의석 수를 합쳐도 325석에 불과해 중도 연합의 과반도 무너질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극우 포퓰리즘 성향인 유럽민족자유(ENF), 자유와 직접민주주의(EFDD), 유럽보수개혁(ECR) 등 세 정당이 총 173석을 차지하며 세력을 크게 불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3개 극우 정치그룹의 의석 수는 전체의 4분의 1에 달한다. 녹색당 그룹도 선전했다.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관한 유럽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재 의석에서 17석 늘린 70석을 얻을 전망이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에서 그동안 아웃사이더로 평가받던 정치세력이 기성 집권당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는 이변도 일어났다. 프랑스에선 마린 르펜 대표가 이끄는 반난민·반EU 성향 국민연합(RN)이 집권 여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를 제치고 최다 의석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부터 올초까지 이어진 반정부 ‘노란조끼’ 시위와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개혁 정책에 따른 피로감이 표심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의회 선거 중도 좌·우파 참패…극우·녹색당 약진
영국에서는 기존 정치의 양대 축인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찬성·반대 정당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브렉시트의 교착 상태가 이어지면서 유권자들이 기성 정당을 외면한 결과로 풀이된다.

유럽의회에서 최대 의석을 보유한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 연합이 가까스로 1위를 차지했지만 녹색당이 20% 이상의 지지율을 얻어 2위로 치고 올라왔다. 또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11석을 얻으며 약진했다.

집권당이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1위를 차지한 경우는 대부분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 나라에서 나타났다. 강력한 반난민 정책을 펴온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집권 여당이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이끄는 극우 정당 동맹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반난민을 앞세운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유럽의회에 대거 진출하면서 EU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EU가 일괄적으로 난민을 받아 각국에 할당하는 현재 방식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선 투표율이 50%를 넘어서며 최근 20년 사이 최고를 기록했다. 유로존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등의 영향으로 정치에 눈을 돌린 유권자가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경제 규모가 큰 국가들은 EU 분담금도 그만큼 많이 내고 있어 불만이 적지 않았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