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롭테크' 무기 삼아 차세대 디벨로퍼 꿈꾼다
'천직'이 된 디벨로퍼
感 대신 데이터로 짓는다
독서광 CEO의 경영 철학은
이런 성장 배경에 걸맞게 그의 경영 스타일은 최첨단을 달린다. 급변하는 주택시장 상황에 발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빅데이터 분석을 많이 활용한다. 선진국 부동산회사처럼 자산을 보유·운영하면서 수익을 내고 있다. 분양 차익에만 의존하는 대다수 건설사와는 대조적이다. 프롭테크(prop tech) 분야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프롭테크는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로, 정보기술을 결합한 부동산 서비스산업을 말한다. 지적 호기심 넘치는 독서광
우미건설은 단독주택 등을 짓던 광주의 무명업체 였다. 창업주는 이석준 사장의 부친 이광래 회장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 개발에 뛰어들면서 부쩍 덩치가 커진 우미건설은 새 인재가 절실했다. 그런 이광래 회장에게 똑똑한 아들의 존재는 각별했다. 인생의 진로가 바뀔 수도 있는 이 회장의 호출에 이석준 사장은 별 생각 없이 응했다.
“건설업체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전공이나 경력도 달랐으니까요. 원래 유학을 꿈꾸고 있었는데 학비를 지원해달라고 할 명분을 얻을 생각에 2~3년만 회사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LG산전 연구원 시절 이 사장은 요즘으로 치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수입 부품 소재를 국산화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다른 나라로 역수출하는 모델을 구상했다. 유학을 준비했던 것도 네트워크를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일단 우미건설에서 경영이나 인사관리, 회계 등의 업무를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우미건설 기획실장으로 입사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는 문득 건설업이 ‘천직’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한 번 가본 곳은 잊지 않을 정도로 3차원적인 공간 지각에 예민했어요. 입지 여건과 금융 환경, 트렌드 변화 등에 맞게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내 상품을 기획하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평소 원하던 방식의 사업에 가까웠던 거죠. 자연스레 유학의 꿈도 접었습니다.”
특유의 지적 호기심은 업무를 빠르게 습득하는 데 도움이 됐다.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한 업무 파악과 함께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 곳곳의 현장을 답사했다. 그때만 해도 우미건설은 물론 대부분 지방 건설업체들의 경영은 단순했다. 가장 기본적인 수요·공급 분석도 없이 감(感)과 관행에 의존해 사업을 진행했다.
그는 착공하는 물량을 파악해 호남 일대 주요 도시의 2~3년 뒤 수급 상황을 면밀히 조사했다. 컴퓨터 두 대에 로터스 등의 프로그램을 설치해 ‘분양 체크리스트’, ‘자금수급계획서’를 작성하는 등 부서 업무를 전산화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데이터에 바탕을 둔 ‘전략 경영’
외환위기의 파고가 서서히 잠잠해질 무렵 그는 목포 하당지구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다른 건설사들은 아직 투자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던 때였다. 그는 하당지구에서 미분양으로 남아 있던 세 필지를 구입했다. 그동안 축적한 수급 상황 분석 자료를 볼 때 분명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수출도 마침 회복세를 보였다. 예상대로 모델하우스를 지을 때부터 지나치는 행인들의 관심이 남달랐다. 1999년 6월 620가구를, 그해 11월 417가구를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여세를 몰아 2000년 6월 447가구를 분양해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주변 건설사들도 우미건설의 시장 분석 방식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우미가 땅을 사면 따라오는 건설사도 적지 않았다. 우미는 하당지구에서 거둔 성공으로 수도권에 진출했다. 호남권을 벗어나 전국구 건설사로 발돋움했다.
자신감이 조금 지나쳤던 것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치면서 우미건설은 위기를 맞았다. 분양시장이 싸늘하게 얼어붙으면서 현금 유동성에 이상징후가 생겼다. 이 사장의 판단은 빨랐다. 위약금을 물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매입했던 토지의 40%가량을 전격 해약했다. 각종 지표가 분양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덕분에 수많은 중견기업이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미건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회사가 안정을 찾아가던 2011년 말부터 이 사장은 다시 전국의 토지시장을 훑기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나주혁신도시, 대구테크노폴리스 등의 토지 매입에 나섰다.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던 때였지만 과거 하당지구에서처럼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든 까닭이다. 그의 예상은 다시 적중했다. 이후 2014년 경산신대지구, 강릉유천지구, 구미확장단지 등에서의 연이은 성공으로 재도약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는 이 사장이 오너 2세의 이미지를 넘어 톱 디벨로퍼로 확고히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프롭테크’ 비즈니스 개척
요즘 이 사장의 관심은 프롭테크다. 공유주거 시장, 부동산 정보산업 등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이 사장은 “결국 경영이란 건 거시경제 상황, 수요자들의 심리적인 요소 등을 제대로 분석해 해법을 제시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며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이런 감각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즐겨 읽는 분야는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 경제사 등이다. 이는 비즈니스와 조직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그는 확신한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미러 뉴런(Mirror neuron)’을 강조합니다. 유인원만 가진 공감 능력인데, 협동 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죠. 기업을 잘한다는 건 결국 내부 임직원, 고객, 사회 등 다양한 대상과 내 입장을 저울질하고 설득하고 호소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미건설도 그런 면에서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관계를 더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그런 게 더 오래간다는 믿음도 있습니다.”
우미건설이 아파트를 설계할 때 개별 가구의 내부 공간 못지않게 조경, 커뮤니티시설 등 공용시설에 신경 쓰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런 우미건설의 아파트 브랜드가 ‘린(Lynn)’이다. 이웃(隣)이라는 뜻이다. 집 짓는 이석준의 철학이 집약된 글자다.
■이석준 사장 프로필
△1964년 광주 출생
△1983년 광주 금호고 졸업
△198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9년 LG산전 연구원 입사
△1993년 우미건설 기획실장
△2000년 대표이사 부사장
△2006년~ 대표이사 사장 ■우미건설은…
'우미린' 앞세워 1兆 클럽 입성…주택사업자 넘어 종합 디벨로퍼로 진화
우미건설은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8년 종합건설업자 시공능력평가 기준 42위다. 1982년 설립 이후 주택, 건축, 토목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우미건설은 지난해 매출 1조243억원(별도 기준)을 기록하며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전년(7124억원)보다 43.7% 급증했다. 2011년까지만 해도 2639억원 수준이던 외형은 7년 새 다섯 배 가까이 불어났다. 지금까지 전국에 8만1000여 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했다. 지난해에만 ‘공도 우미린 더퍼스트(1358가구)’, ‘청주 테크노폴리스 우미린(1020가구)’, ‘시흥은계지구 우미린(1179가구)’ 등 10여 개 사업장을 완공했다. 올해는 세종 주상복합(465가구), 위례신도시(891가구), 인천루원시티 주상복합(1412가구) 등 6300여 가구를 시장에 내놓는다. 우미린은 입주민이 저렴한 가격으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 린’, 방문객들이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 게스트하우스 등을 차별화 요소로 내세운다.
내실도 좋다. 최근 20여 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익을 냈다. ‘무차입 경영’도 이어가고 있다. 올해 건설공제조합이 시행한 신용평가에서 ‘AAA등급’,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AAA등급’을 각각 받았다.
우미건설은 주택사업을 넘어 종합 디벨로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지난해 우미자산관리를 설립해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의 위탁관리를 시작했다. 천안 동탄 광교 등에 대규모 상업시설을 공급 및 운영하고 있다. 자체 사업, 민관합동사업, 임대리츠 등 다양한 주거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지식산업센터 브랜드인 ‘뉴브’도 선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신사업 성장 기반 확대를 위한 경영프레임 변화, 개발사업 다각화 역량 확충, 리스크 분석 강화 및 선제적 대응 등의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선/이유정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