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케어' 대형병원 쏠림 더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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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종합병원 진료비 26.6兆
19.8% 늘어…15년來 최대폭↑
19.8% 늘어…15년來 최대폭↑
지난해 대형 병원의 진료비가 15년 만에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확대해 고가 의료서비스의 문턱을 대폭 낮춘 ‘문재인케어’로 인해 대형 병원 쏠림이 심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건강보험공단의 2018년 건강보험 주요 통계에 따르면 종합병원급 의료기관(병상 100개 이상 대형 병원) 진료비는 26조6160억원으로 전년보다 19.8%(4조4062억원) 늘었다. 이는 2017년(5.2%)보다 세 배 이상 높고 2003년(21.1%) 후 최고치다.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과잉 진료’가 늘어나면서 병원 양극화도 심해졌다. 2016년 32.7%에서 2017년 32.0%로 감소했던 종합병원 시장점유율은 작년 34.3%로 급증했다. 이에 비해 동네병원을 뜻하는 의원급의 점유율은 2016년 27.8%에서 2017년 28.3%로 올랐다가 지난해 27.5%로 떨어졌다. 지난해 폐업한 동네병원은 1179곳이었다.
정부는 2017년 8월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용·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케어)’을 발표했다. 이후 뇌·뇌혈관 등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2~3인실 입원 등에 줄줄이 건보가 적용됐다. 이들 서비스는 주로 대형 병원에서 시행하는 것이어서 큰 병원만 도와주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문턱 낮아진 MRI·CT…동네의원 갈 환자도 종합병원서 '의료쇼핑' 40대 회사원 이모씨는 최근 아내로부터 ‘수면다원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수면다원검사는 각종 수면 질환을 진단해주는 검사다. 이씨는 원래 코골이를 했는데 최근 무호흡 증상까지 나타나 괴로움이 컸다. 아내는 작년 7월부터 수면다원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대학 병원에서도 10만원 정도면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원래는 70만~100만원이었다. 이씨는 기대에 부풀어 대학 병원에 문의했지만 실망만 안고 돌아왔다. 예약자가 많아 검사를 받으려면 1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다. 그는 “건보 적용 이후 코골이 정도만 있는 사람도 다들 병원을 찾아서 예약 대기가 늘었다고 하더라”며 “정작 나처럼 증상이 심한 사람은 제때 진료받기 어려워진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 8월 ‘문재인케어’ 시행 이후 의료 시장에 나타난 ‘진풍경’이다. 문재인케어는 미용·성형을 제외한 의료서비스는 웬만하면 건강보험 지원을 해주겠다는 정책이다. 선택진료비(특진료) 폐지,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의 2~3인실 입원비와 뇌·뇌혈관 질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건보 적용 등이 차례로 시행됐다. 그 결과 대형병원 문턱이 낮아져 큰 병원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형병원에 환자가 몰리면서 중소 규모 병원의 경영난이 심해지고, 전체 의료비 증가로 건보 재정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의료시장 양극화 심화
대형병원 쏠림과 병원 양극화는 통계 수치로 확인됐다. 28일 건강보험공단의 ‘2018년 건강보험 주요 통계’를 보면 지난해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 진료비는 26조6160억원으로 전년보다 19.8% 늘었다. 2003년(21.1%) 이후 최대폭 증가다.
구체적으로 상급종합병원의 입원료가 2017년 1조3161억원에서 지난해 1조7486억원으로 32.9% 증가했다. 2~3인실 입원비 건보 적용 등 영향으로 풀이된다. MRI 진료비도 상급종합병원에서만 17.9% 늘었다. 2017년엔 0.8% 증가했던 점을 감안하면 폭증에 가깝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병원에서 MRI를 낮에 받으려면 3개월, 새벽에 받으면 1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대형병원의 시장 잠식 현상이 심해졌다. 대형병원 시장점유율은 2017년 32.0%에서 지난해 34.3%로 뛰었다. 역대 최대치다. 기관 수로는 대형병원(353개)이 전체 의료기관(9만3184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4%에 불과하다.
반면 동네병원인 의원급(3만1718개)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28.3%에서 27.5%로 떨어졌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매해 1200~1300곳, 하루에 세 곳꼴로 폐업하는 등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문재인케어로 상황이 더 악화된 셈이다. 정부는 만성질환과 가벼운 질병은 의원급을 이용하도록 하는 정책도 펴고 있으나 이행이 더디고 효과도 미미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1차 의료기관 이용 활성화 정책을 더 강화하더라도 대형병원에 몰리는 발걸음을 되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케어 대폭 수정해야”
더 큰 문제는 고령화 영향으로 안 그래도 빠른 의료비 증가 속도가 더 가팔라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건강보험이 가입자 1인당 지원한 금액(보험급여비)은 123만9000원으로 전년보다 14.8% 증가했다. 2006년(17.4%) 이후 12년 만에 가장 큰 증가율이다.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건보로 지원하는 경우가 늘어난 데 따른 결과다.
이 여파로 지난해 건강보험 당기재정수지는 177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건보가 적자가 난 것은 2010년 이후 8년 만이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2023년까지 건강보험이 매년 적자를 보고 현재 20조6000억원 규모인 적립금이 11조원으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지금의 대형병원과 고가 의료서비스의 수요 급증세를 감안하면 적립금 소진 속도가 이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건보 적립금이 2026년 고갈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적립금이 바닥나면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돈이 급증해 국가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준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모든 의료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식의 건강보험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국민에게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만 보장하고 나머지는 시장 원리에 맡기는 방향으로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과잉 진료’가 늘어나면서 병원 양극화도 심해졌다. 2016년 32.7%에서 2017년 32.0%로 감소했던 종합병원 시장점유율은 작년 34.3%로 급증했다. 이에 비해 동네병원을 뜻하는 의원급의 점유율은 2016년 27.8%에서 2017년 28.3%로 올랐다가 지난해 27.5%로 떨어졌다. 지난해 폐업한 동네병원은 1179곳이었다.
정부는 2017년 8월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용·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케어)’을 발표했다. 이후 뇌·뇌혈관 등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2~3인실 입원 등에 줄줄이 건보가 적용됐다. 이들 서비스는 주로 대형 병원에서 시행하는 것이어서 큰 병원만 도와주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문턱 낮아진 MRI·CT…동네의원 갈 환자도 종합병원서 '의료쇼핑' 40대 회사원 이모씨는 최근 아내로부터 ‘수면다원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수면다원검사는 각종 수면 질환을 진단해주는 검사다. 이씨는 원래 코골이를 했는데 최근 무호흡 증상까지 나타나 괴로움이 컸다. 아내는 작년 7월부터 수면다원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대학 병원에서도 10만원 정도면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원래는 70만~100만원이었다. 이씨는 기대에 부풀어 대학 병원에 문의했지만 실망만 안고 돌아왔다. 예약자가 많아 검사를 받으려면 1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다. 그는 “건보 적용 이후 코골이 정도만 있는 사람도 다들 병원을 찾아서 예약 대기가 늘었다고 하더라”며 “정작 나처럼 증상이 심한 사람은 제때 진료받기 어려워진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 8월 ‘문재인케어’ 시행 이후 의료 시장에 나타난 ‘진풍경’이다. 문재인케어는 미용·성형을 제외한 의료서비스는 웬만하면 건강보험 지원을 해주겠다는 정책이다. 선택진료비(특진료) 폐지,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의 2~3인실 입원비와 뇌·뇌혈관 질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건보 적용 등이 차례로 시행됐다. 그 결과 대형병원 문턱이 낮아져 큰 병원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형병원에 환자가 몰리면서 중소 규모 병원의 경영난이 심해지고, 전체 의료비 증가로 건보 재정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의료시장 양극화 심화
대형병원 쏠림과 병원 양극화는 통계 수치로 확인됐다. 28일 건강보험공단의 ‘2018년 건강보험 주요 통계’를 보면 지난해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 진료비는 26조6160억원으로 전년보다 19.8% 늘었다. 2003년(21.1%) 이후 최대폭 증가다.
구체적으로 상급종합병원의 입원료가 2017년 1조3161억원에서 지난해 1조7486억원으로 32.9% 증가했다. 2~3인실 입원비 건보 적용 등 영향으로 풀이된다. MRI 진료비도 상급종합병원에서만 17.9% 늘었다. 2017년엔 0.8% 증가했던 점을 감안하면 폭증에 가깝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병원에서 MRI를 낮에 받으려면 3개월, 새벽에 받으면 1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대형병원의 시장 잠식 현상이 심해졌다. 대형병원 시장점유율은 2017년 32.0%에서 지난해 34.3%로 뛰었다. 역대 최대치다. 기관 수로는 대형병원(353개)이 전체 의료기관(9만3184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4%에 불과하다.
반면 동네병원인 의원급(3만1718개)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28.3%에서 27.5%로 떨어졌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매해 1200~1300곳, 하루에 세 곳꼴로 폐업하는 등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문재인케어로 상황이 더 악화된 셈이다. 정부는 만성질환과 가벼운 질병은 의원급을 이용하도록 하는 정책도 펴고 있으나 이행이 더디고 효과도 미미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1차 의료기관 이용 활성화 정책을 더 강화하더라도 대형병원에 몰리는 발걸음을 되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케어 대폭 수정해야”
더 큰 문제는 고령화 영향으로 안 그래도 빠른 의료비 증가 속도가 더 가팔라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건강보험이 가입자 1인당 지원한 금액(보험급여비)은 123만9000원으로 전년보다 14.8% 증가했다. 2006년(17.4%) 이후 12년 만에 가장 큰 증가율이다.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건보로 지원하는 경우가 늘어난 데 따른 결과다.
이 여파로 지난해 건강보험 당기재정수지는 177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건보가 적자가 난 것은 2010년 이후 8년 만이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2023년까지 건강보험이 매년 적자를 보고 현재 20조6000억원 규모인 적립금이 11조원으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지금의 대형병원과 고가 의료서비스의 수요 급증세를 감안하면 적립금 소진 속도가 이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건보 적립금이 2026년 고갈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적립금이 바닥나면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돈이 급증해 국가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준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모든 의료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식의 건강보험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국민에게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만 보장하고 나머지는 시장 원리에 맡기는 방향으로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