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과도한 게임 이용에 대한 질병 규정 방침에 본격 대응한다. 관련 부처 간 갈등이 심해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게임업계에서는 WHO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관한 ‘WHO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게임산업협회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관한 ‘WHO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재 맡은 국무조정실

정부는 28일 세종청사에서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부여와 관련해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 차관회의를 열었다. 지난 25일 제72차 WHO 총회의 B위원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안이 통과한 데 따른 조치다.

복지부는 WHO의 결정을 국내에 적용하기 위해 한국표준질병분류(KCD) 개정을 주도할 계획이었다. 국내에서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KCD에 해당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산업 주무 부처인 문체부가 강력 반발했다. “문체부는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ICD의 질병 목록에서 빼도록 노력할 것이고 KCD 적용에도 반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부처 간 갈등이 커지자 국무조정실이 중재에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관계 부처 간 혼선에 대해 경고했다. 이 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관계 부처는 향후 대응을 놓고 조정되지도 않은 의견을 말해 국민과 업계에 불안을 드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WHO가 게임 이용 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한 것에 대해) 국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고 덧붙였다. “기대는 체계적 조사와 연구를 통해 게임 이용 장애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고, 우려는 게임 이용자에 대한 부정적 낙인과 국내외 규제로 게임산업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리는 이어 “충분한 논의를 통해 건전한 게임 이용 문화를 정착시키면서 게임산업을 발전시키는 지혜로운 해결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게임 이용 장애가 국내에 적용되더라도 시행 시기는 이르면 2026년이라고 설명했다. WHO 권고가 2022년 1월 발효되고 KCD의 다음 개정 시기가 2025년이기 때문이다.

이낙연 "문체부-복지부 갈등 조정해 게임산업 발전시킬 것"
거세지는 게임업계 반발

게임 관련 정부 기관과 게임업계의 반발도 이어졌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WHO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은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코드에 도입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낙인 효과”라고 말했다. 게임을 술과 담배처럼 무조건 해로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강 본부장은 “2014년부터 5년간 2000명을 대상으로 게임 이용자를 연구한 결과 5년 동안 게임에 과몰입한 청소년은 1.4%에 불과했다”며 “게임 과몰입에 빠졌다가 금방 되돌아오는데 이를 질병으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게임 과몰입은 게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용자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라는 것이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WHO 총회에서 의결된 사항도 WHO FIC(보건의료분야 표준화협력센터)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면 수정이나 개정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복지부가 주도하는 민관협의체는 틀이 정해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임에 부정적인 의료계를 대변하는 복지부가 주관하는 협의체는 공정하게 운영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장(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은 “게임을 질병의 하나로 규정하고 치료 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상 개인 행동의 자유, 기업 활동의 자유 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날 WHO의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질병코드 부여 확정 및 국내 도입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는 “게임은 전체 국민의 70%가 이용하는 건전한 대중문화이자 놀이문화”라며 “게임할 자유를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극히 일부의 사람이 게임에 과몰입돼 있다면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런 점을 감안해 “나쁜 게임이 아니라 나쁜 환경을 해결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게임학회·협회·기관 등 88개 단체로 이뤄진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는 29일 공식 출범식을 하고 복지부 항의 방문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