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의료계는 WHO의 정의에 따라 그동안 가볍게 여겨졌던 '직장 스트레스'에 대한 관리가 본격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WHO는 최근 세계보건총회에서 번아웃을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자'로 판단했다.
다만 이를 질병으로 분류하지는 않았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WHO가 번아웃을 구체적으로 직업과 관련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지목하면서 직장 스트레스에 대한 인식이 재조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동안 번아웃은 우울증, 불안장애, 적응 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 증상의 일종인지, 이를 질병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WHO 정의와 달리 직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번아웃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는 견해도 상당수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은 원인이 아닌 현상을 보고 진단을 하기 때문에 고혈압, 당뇨처럼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번아웃 역시 환자에게서 여러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 학계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직장 스트레스에 보다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예방과 치료를 위한 연구가 더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번아웃은 직장인들에게 익숙한 용어지만, 자신이 번아웃 상태인지 모르고 방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누구나 겪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는 "번아웃을 겪으면서도 몰라서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병원에 찾아오는 경우 퇴사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증상이 심각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번아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 예방이나 조기 치료가 확대되고, 이에 따라 우울증이나 적응 장애, 불안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으로 증상이 심각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 스트레스를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쇄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권 교수는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은 정신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며 "사회적으로도 번아웃 관리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면 실제 많은 직장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 역시 "방전된 스마트폰이라고 해서 나쁜 스마트폰이 아니다"라며 "번아웃 역시 스트레스 관리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