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시장에 대한 정부 기조가 ‘투기 억제’에서 ‘시장 활성화’로 180도 달라졌다. 과도한 규제로 국내 파생상품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은 개인투자자의 예탁금과 사전교육 부담을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시장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추기로 했다. 지수상품 만기 다양화와 금리 차를 활용하는 스프레드 거래 허용 등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신상품 공급도 추진한다.

▶본지 5월 21일자 A1, 4면 참조

“규제에 위축된 시장 다시 살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사진)은 30일 부산 한국거래소 본사에서 열린 ‘파생상품 발전방안 발표 및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파생상품시장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그간 “2011년을 기점으로 정부가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면서 국내 파생상품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은 2009~2011년 3년 연속 거래량 기준 세계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유망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의 과도한 투자에 따른 시장 과열이 이슈가 되자 정부는 2011년부터 옵션 매수 전용 계좌 폐지, 코스피200 옵션 계약 승수 상향, 개인 기본예탁금 인상, 사전교육·모의거래 의무화 등 규제를 잇따라 도입했다.

그 결과 활기를 띠던 파생상품시장은 급격히 위축됐다. 개인투자자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2011년 16조9851억원에서 지난해 6조650억원으로 64.3% 감소했다. 증권회사와 은행 등 기관투자가 거래대금 역시 같은 기간 32조3007억원에서 16조2935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국내 시장이 침체에 빠지자 개인투자자들이 규제가 덜한 해외 파생상품시장으로 대거 이동하는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시장 요구를 대폭 수용해 개인투자자에 대한 과도한 진입 규제를 풀어주기로 했다. 현재 일반 개인투자자는 신규 파생선물·옵션 매수 거래 시 3000만원 이상, 옵션 매도 거래 시에는 5000만원 이상의 기본예탁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이 같은 기본예탁금 하한을 1000만~2000만원으로 낮추고 증권사별로 투자자의 신용·결제이행능력 등을 파악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개인이 파생상품 거래에 참여하려면 이수해야 하는 사전교육(30시간)과 모의거래(50시간)는 사전교육 1시간, 모의거래 3시간으로 대폭 간소화했다.

기관의 시장 참여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정부는 주요국 시장 대비 증거금 한도가 높은 점이 기관의 파생상품시장 참여를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라고 판단하고 신용위험거래증거금 산정 시 추가로 요구하는 신용위험한도(10%) 요건을 폐지하기로 했다. 아울러 파생 거래 관련 인력과 조직 등이 부족한 증권사가 선물회사를 통해 파생주문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선물사에는 파생상품전문 사모펀드업 진출도 허용하기로 했다.

“파생시장 인식 전환 계기 될 것”

코스피200 옵션 등 주식파생상품의 만기를 다양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기존 코스피200 옵션은 만기 결제가 분기 단위로만 이뤄졌는데, ‘위클리(주간) 옵션’을 새로 도입해 매주 만기 결제일이 도래하는 파생상품 출시도 허용할 방침이다.

또 파생상품 거래폭을 확대한다. 국채금리 선물은 3년물, 5년물, 10년물 단위로만 거래가 이뤄졌는데 3년물과 10년물 간 금리 차를 활용하는 스프레드 거래도 가능하도록 개선할 예정이다.

파생상품 개발과 관련, 시장에 더 많은 자율성이 주어지도록 상장 체계가 바뀐다. 거래소는 거래 가능한 장내 파생상품 종류를 시행세칙에 명시하는 ‘포티지브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와 달리 미국 등 해외 주요 거래소는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상품을 개발해 거래를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상장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파생상품 개발과 상장 체계를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하고 시장의 시세정보 접근권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정부 발표를 환영했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투기적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 매도돼온 파생시장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면서도 “거래증거금과 이중규제 소지가 있는 개인투자자 기본예탁금을 아예 없애는 등의 방안이 빠진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오형주/임근호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