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우의 부루마블] 전열 가다듬는 '게임업계'…게임 중독 장기전 돌입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중독 질병 등재 갈등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게임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도입 의지를 드러내면서 게임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WHO 결정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일주일 간 1500개 넘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고 WHO의 결정에 반대하는 세미나(콘퍼런스)도 10개 이상 열렸다. 찬반 의견이 맞서는 만큼 쟁점도 다양했다. 현대판 마녀사냥이라는 게임업계와 예방 및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복지부가 맞섰다.

게임 업계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지만 복지부의 입장은 변한 게 없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30일 WHO의 게임 중독 질병 등재 결정에 대해 "질병으로 분류될 만한 필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됐고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것"이라 말했다. 사실상 국내 도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복지부의 이 같은 입장이 처음은 아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미 "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확정하면 이를 바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담당 과장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내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게임업계는 총공세로 맞서고 있다. 89개 게임 단체가 공동대책위를 꾸렸고 협회들은 반대 성명을 쏟아내고 있다. 복지부와 의학계를 저격하는 날선 비판도 시작됐다. 의학계와 복지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게임을 질병으로 몰고 있다는 것.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는 "일부 정신과 의사들의 잘못된 진단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암을 키우게 될 것"이며 "게임을 범인으로 모는 그들이 바로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갈등이 커지자 국무조정실이 중재에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건전한 게임 이용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며 "게임산업을 발전시키는 지혜로운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국조실은 복지부·문체부·교육부·여가부·통계청·게임업계·의료계·전문가·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논란이 한풀 꺾이자 게임업계의 대응도 달라졌다.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수익에만 집중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산업 전반을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번이야말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지적도 있다.

공동대책위의 발대식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게임산업과 문화가 죽었다는 의미로 상복을 입고 반성과 새 출발을 선언했다. 20대 대학생이 '게임 자유선언'을 낭독한 것도 같은 의미다.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우리가 설득해야 할 대상은 복지부가 아닌 국민"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복지부동의 복지부가 아닌 게임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한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복지부가 게임업계보다 한 수 위에 있다. 복지부는 시종일관 아이들의 건강과 학업을 걱정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게임업계가 아무리 반대해도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며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장기전으로 가야한다. 어차피 국내 도입은 2025년 결정된다"고 말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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