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IT] 제품 그대로, 매출 50%↑ '데이터 분석'이 판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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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멍’을 키워드로 넣으면 연관 검색어로 ‘멍 빨리 빼는 법’ ‘멍 연고’ 등이 뜬다. 이 자동완성 검색어를 클릭하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제품이 유유제약의 멍 완화 연고인 베노플러스겔. 빅데이터를 활용해 판도를 바꾼 대표적 마케팅 사례로 꼽힌다.
지난달 대표 자리에 오른 유유제약 오너 3세 유원상 부사장이 상무 시절 주도한 성공작이다. 진통소염제의 일종인 베노플러스겔은 매출 부진을 겪고 있었다. 당초 유유제약이 제품 차별화 요소로 내세운 점은 자극이 적어 민감한 아기 피부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영·유아를 베노플러스겔의 주요 타깃층으로 삼았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유 대표가 지난 2013년 베노플러스겔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에 나선 이유다. 트위터·페이스북·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서 약 26억건의 데이터를 수집해 뜯어봤다. 현실은 달랐다. 베노플러스겔의 주고객은 영유아가 아니었다. 사용자 가운데 20~30대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유제약의 빅데이터 활용 리포지셔닝 사례를 분석한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MBA 교수는 “2012~2013년 블로그 대상 분석이 결정적이었다. ‘멍-여성’ 키워드 조합이 ‘멍-아이’ 키워드 조합보다 6배 정도 많았다”고 귀띔했다. 베노플러스겔의 시장 타깃팅이 잘못 됐다는 얘기였다.
데이터 집계 결과는 더 많은 시사점을 가져다줬다. 멍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위는 ‘가리기’였다. 심층 분석해보니 여성이 수영복·민소매옷·미니스커트 등을 입을 때 멍 부위가 노출되는 것을 숨기려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연히 노출이 많은 여름철에 멍을 없애는 방법이나 멍 연고 검색이 늘 것으로 생각됐다.
실제 결과는 다시 한 번 비틀어야 했다. 의외로 겨울철도 여름철 못지않게 멍에 대한 검색 빈도가 높았던 것이다. 김 교수는 “성형 특수 때문이었다. 고3 수험생이나 대학생이 겨울방학 기간에 성형한 뒤 멍 든 부위를 낫게 하려고 찾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유유제약은 판매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아이들 피부에는 부드럽게 감싸주는 베노플러스겔을 발라주세요” 문구가 적혔던 기존 포스터는 여성이 등장해 ‘멍에 특효’라는 메시지를 뚜렷이 전달하는 포스터로 교체했다. 겨울철 성형 수요까지 감안, 성형 후 얼굴에 붕대를 감은 여성이 달걀 대신 베노플러스겔을 선택하는 모습의 겨울용 포스터도 별도 제작했다. 기존 연고 형태 디자인은 립글로스와 비슷한 매끄러운 튜브 용기로 바꿨고, 제품 포장지 용도 설명에서도 ‘멍’을 맨 앞 순서로 오게끔 했다.
그 결과 베노플러스겔은 제품 성분이나 기능 변화 없이 1년 만에 매출이 48%나 뛰었다. ‘맨소래담과 유사한 영유아용 바르는 진통소염제’에서 ‘멍 빼는 여성용 제품’으로 차별화한 게 먹혔다. 맨소래담이란 강력한 브랜드가 아니라 민간 요법인 달걀과 경쟁하도록 판 자체를 바꾼 효과였던 셈이다.
빅데이터와는 무관할 것 같은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도 데이터 분석을 접목해 비즈니스를 혁신한 사례로 거론된다.
닭 무게 측정·예측에 사물인터넷(IoT)을 도입하면서다. 하림은 연간 닭 100만마리를 키워내는 양계농장에 적외선 CC(폐쇄회로)TV, 0.1초 간격으로 닭의 무게를 재는 센서, 온도·습도·분진 등을 측정하는 센서를 비롯해 측정된 데이터를 실시간 전송하는 무선통신장비를 설치했다.
이 과정을 거쳐 매일 중앙분석센터에 쌓이는 수십만개의 데이터는 닭 체중 증가 추이, 무게 분포 등을 10그램 단위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
발주처의 닭 무게에 대한 조건이 까다로워진 탓이다. 예컨대 학교 급식업체는 1.7kg 이상,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는 1.5~1.6kg 식으로 제각각 다른 조건을 요구했다.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닭을 해체, 부위별로 판매해야 해 제 값을 못 받았다. 사람이 직접 매주 전체 닭의 1%를 샘플로 잡아 일일이 측정해 평균 무게를 추정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손실이 커지게 됐다. 하림의 IoT와 빅데이터 접목은 ‘니즈(필요)’에 맞춘 발빠른 대응이었다.
이들 케이스만이 아니다. 편의점에서 요구르트를 한꺼번에 3개 이상 마시는 고객이 많다는 점에 근거해 대용량 요구르트를 출시한 것도, 김치찌개 맛 컵라면을 살 때 감자맛 스낵이 함께 결제된 적이 많다는 데서 착안해 ‘김치찌개 맛 감자칩’을 출시한 것도 빅데이터 분석의 결과였다.
김 교수는 〈빅데이터가 만드는 제4차 산업혁명〉에서 “이제 ‘서울 강남 거주 20대 여성’ 같이 단일 집단으로 분류해 일방적으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해선 안 된다”면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말했듯 ‘계량적 분석에 뛰어난 기업, 즉 사물들이 관련돼 있으며 왜 그리고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잘 아는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지난달 대표 자리에 오른 유유제약 오너 3세 유원상 부사장이 상무 시절 주도한 성공작이다. 진통소염제의 일종인 베노플러스겔은 매출 부진을 겪고 있었다. 당초 유유제약이 제품 차별화 요소로 내세운 점은 자극이 적어 민감한 아기 피부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영·유아를 베노플러스겔의 주요 타깃층으로 삼았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유 대표가 지난 2013년 베노플러스겔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에 나선 이유다. 트위터·페이스북·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서 약 26억건의 데이터를 수집해 뜯어봤다. 현실은 달랐다. 베노플러스겔의 주고객은 영유아가 아니었다. 사용자 가운데 20~30대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유제약의 빅데이터 활용 리포지셔닝 사례를 분석한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MBA 교수는 “2012~2013년 블로그 대상 분석이 결정적이었다. ‘멍-여성’ 키워드 조합이 ‘멍-아이’ 키워드 조합보다 6배 정도 많았다”고 귀띔했다. 베노플러스겔의 시장 타깃팅이 잘못 됐다는 얘기였다.
데이터 집계 결과는 더 많은 시사점을 가져다줬다. 멍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위는 ‘가리기’였다. 심층 분석해보니 여성이 수영복·민소매옷·미니스커트 등을 입을 때 멍 부위가 노출되는 것을 숨기려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연히 노출이 많은 여름철에 멍을 없애는 방법이나 멍 연고 검색이 늘 것으로 생각됐다.
실제 결과는 다시 한 번 비틀어야 했다. 의외로 겨울철도 여름철 못지않게 멍에 대한 검색 빈도가 높았던 것이다. 김 교수는 “성형 특수 때문이었다. 고3 수험생이나 대학생이 겨울방학 기간에 성형한 뒤 멍 든 부위를 낫게 하려고 찾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유유제약은 판매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아이들 피부에는 부드럽게 감싸주는 베노플러스겔을 발라주세요” 문구가 적혔던 기존 포스터는 여성이 등장해 ‘멍에 특효’라는 메시지를 뚜렷이 전달하는 포스터로 교체했다. 겨울철 성형 수요까지 감안, 성형 후 얼굴에 붕대를 감은 여성이 달걀 대신 베노플러스겔을 선택하는 모습의 겨울용 포스터도 별도 제작했다. 기존 연고 형태 디자인은 립글로스와 비슷한 매끄러운 튜브 용기로 바꿨고, 제품 포장지 용도 설명에서도 ‘멍’을 맨 앞 순서로 오게끔 했다.
그 결과 베노플러스겔은 제품 성분이나 기능 변화 없이 1년 만에 매출이 48%나 뛰었다. ‘맨소래담과 유사한 영유아용 바르는 진통소염제’에서 ‘멍 빼는 여성용 제품’으로 차별화한 게 먹혔다. 맨소래담이란 강력한 브랜드가 아니라 민간 요법인 달걀과 경쟁하도록 판 자체를 바꾼 효과였던 셈이다.
빅데이터와는 무관할 것 같은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도 데이터 분석을 접목해 비즈니스를 혁신한 사례로 거론된다.
닭 무게 측정·예측에 사물인터넷(IoT)을 도입하면서다. 하림은 연간 닭 100만마리를 키워내는 양계농장에 적외선 CC(폐쇄회로)TV, 0.1초 간격으로 닭의 무게를 재는 센서, 온도·습도·분진 등을 측정하는 센서를 비롯해 측정된 데이터를 실시간 전송하는 무선통신장비를 설치했다.
이 과정을 거쳐 매일 중앙분석센터에 쌓이는 수십만개의 데이터는 닭 체중 증가 추이, 무게 분포 등을 10그램 단위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
발주처의 닭 무게에 대한 조건이 까다로워진 탓이다. 예컨대 학교 급식업체는 1.7kg 이상,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는 1.5~1.6kg 식으로 제각각 다른 조건을 요구했다.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닭을 해체, 부위별로 판매해야 해 제 값을 못 받았다. 사람이 직접 매주 전체 닭의 1%를 샘플로 잡아 일일이 측정해 평균 무게를 추정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손실이 커지게 됐다. 하림의 IoT와 빅데이터 접목은 ‘니즈(필요)’에 맞춘 발빠른 대응이었다.
이들 케이스만이 아니다. 편의점에서 요구르트를 한꺼번에 3개 이상 마시는 고객이 많다는 점에 근거해 대용량 요구르트를 출시한 것도, 김치찌개 맛 컵라면을 살 때 감자맛 스낵이 함께 결제된 적이 많다는 데서 착안해 ‘김치찌개 맛 감자칩’을 출시한 것도 빅데이터 분석의 결과였다.
김 교수는 〈빅데이터가 만드는 제4차 산업혁명〉에서 “이제 ‘서울 강남 거주 20대 여성’ 같이 단일 집단으로 분류해 일방적으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해선 안 된다”면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말했듯 ‘계량적 분석에 뛰어난 기업, 즉 사물들이 관련돼 있으며 왜 그리고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잘 아는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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