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회사 분할)을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울산대 체육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소화기로 주총장 나무 벽을 뚫고 난입했다. 주총 의장인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이 오전 11시23분께 의안 가결을 선언한 직후였다.

10여 명의 노조원은 단상에 소화기 분말을 뿌리고 책상과 의자를 뒤엎으며 난동을 부렸다. 체육관은 순식간에 뿌연 분말로 가득 찼다. 의사 진행이 조금만 늦었거나, 현대중공업 임직원과 주주들이 황급히 주총장 밖으로 피신하지 않았더라면 큰 사고가 발생할 뻔한 순간이었다.

이날 주총을 전후해 현대중공업 노사 양측은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선제 공격은 노조에서 했다. 법원이 주총 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지난 27일, 노조는 현대중공업 본사에 진입하는 척하다가 주총장인 한마음회관을 기습 점거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이었다.

한마음회관이 일반인도 이용하는 회사 밖 시설이라 방심한 탓인지 회사는 속수무책으로 주총장을 내줬다. 한마음회관과 현대중공업 본사는 걸어서 7~8분 거리다.

이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현대자동차 노조까지 가세해 한마음회관 앞에 노조원 5000여 명이 집결하자 회사 측은 주총장 변경 전략을 세웠다. 작전 노출을 우려해 마지막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연막 작전’을 폈다. 회사 측은 주총 당일인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한마음회관 앞에 수백 명의 질서유지요원을 배치했다. 법원에서 파견한 주총 검사인도 8시30분과 9시에 주총장 입구에서 노조 측에 시설을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비슷한 시간에 회사는 본사 정문을 버스 10여 대를 동원해 틀어막고 다른 입구도 차단했다. ‘회사가 본사 체육관에서 주총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노조 안팎에 퍼졌다.

당초 예정된 주총 시작 시간인 10시가 되자 회사 임직원과 주주 등 100여 명이 한마음회관 앞에 모여 노조와 대치했다. 20여 분간 맞서던 중 갑자기 “주총 장소를 울산대 체육관으로 변경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노조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울산대로 이동했다.

울산대 체육관에는 현대중공업 질서유지요원들이 이미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경찰력도 배치돼 있었다. 대다수가 체육관 정문에서 대치하는 사이 일부 노조원이 후문 유리문을 깨고 주총장 벽을 뚫어 단상까지 침입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주총은 끝난 뒤였다.

울산=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