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취급시설 관리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영세 중소기업의 부담이 대폭 늘어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법 위반 자진신고 업체에 대한 처벌 유예기간이 지난달 21일 끝나면서 환경부가 본격적인 단속에 들어간 탓이다. 내년부터 화관법 시행 전 완공된 시설에 대한 처벌 유예기간마저 끝나면 기업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수억원 드는 시설개선 엄두 못내…현실 무시한 화관법, 영세 中企 범법자로 내몬다"
2일 국회와 관계부처에 따르면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로 열리는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안전관리 이행력 강화 방안’ 토론회에 앞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토론자료를 이 의원에게 제출했다. 양 본부장은 “화관법 시행 후 현실과 괴리된 규제로 중소기업의 애로가 심화되고 있다”며 “사업장마다 1억원 안팎의 시설 개선비용이 발생하는 게 대표적인 예”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영세 중소기업이 규정 설비를 모두 갖추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데도 화관법은 매년 정기검사를 통해 적합 여부를 판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상당수 중소기업 대표가 범법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중소기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유해화학물질을 기준 이하로 배출하는 사업장에는 적용 규제를 413개에서 70개로 줄여주기로 했다. 하지만 한설전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환경위원장은 “‘유해화학물질 소량기준’에 관한 환경부 고시가 유해화학물질별 농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탓에 대다수 도금업체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올해 말 유예기간이 끝나는 화관법 제24조 시행규칙을 둘러싼 우려도 나왔다. 이 조항은 유해물질이 낡은 배관을 타고 외부로 새나가는 걸 막는다는 목적으로 관련 공장의 저압가스 배관검사를 의무화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에선 공정 특성상 배관검사를 하려면 전체 공장을 멈춰야 한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최영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무는 “디스플레이업계는 전자동 시스템으로 안전관리를 하고 있다”며 “검사를 위해 인력을 투입하면 오히려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측은 “화학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조치는 필요하다”며 “정부는 화관법 유예기간을 두고 설명회를 여는 등 업계와 소통해왔고 앞으로도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