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미국의 화웨이 보복이 두려운 진짜 이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최대 통신기업에 거래 중단이라는 보복조치를 취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무역적자 축소에서 시작한 미·중 갈등 전선은 국유기업 보조금과 지식재산권 이슈로 쟁점이 변하더니, 드디어 첨단산업 헤게모니라는 차세대 전장(戰場)으로 넘어왔다.

지난해 포천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중국 업체는 111개다. 인구 14억 명의 앞마당에서 3위권에 오른 기업은 그 덩치만으로 글로벌 500대 랭킹에 든다. 화웨이는 이런 기업과 한 차원 다르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다. 전 세계에 연구개발센터만 16개(2016년 기준)를 둔 통신장비 분야 최고 기업이다.

지난해 말 광둥성 선전의 한 호텔 로비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100명 남짓한 흑인 청년이 유창한 중국어로 대화하는 광경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학생 때부터 화웨이와 연을 맺고 중국어 및 기술교육을 받은 직원들이었다. 아프리카·아시아 통신시장에서 이룩한 화웨이의 성공이 저가공세 덕택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화웨이에 대한 보복은 ‘미국 안보에 중대 위협을 가할 경우 상거래를 중단할 수 있다’는 미국 국내법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주장처럼 화웨이가 이란 제재나 사이버 보안에 위협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의 4차 산업 주도권을 위협하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자율주행, 인공지능, 스마트공장, 스마트시티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최단시간에 모아 시차 없이 전달하는 조력자로서 5세대(5G) 통신이 상용화한 덕분이다. 이 분야의 글로벌 최강자가 화웨이다. 화웨이가 없는 ‘중국제조 2025’는 문자 그대로 ‘중국의 꿈’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의 화웨이 보복은 이 회사가 2010년대 글로벌화 과정에서 고가 스마트폰 사업 비중을 늘리며 외국산 부품 및 소재 의존도를 높인 것과 관련이 깊다. 중국 증권회사 추계에 따르면 이 회사의 글로벌 공급사슬에 포함된 기업 중 대륙 기업은 24개로 미국의 33개보다 적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이 최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애플에 보복한다면 나부터 말리겠다”며 자제를 요청한 것은 군데군데 속 빈 강정 같은 중국 정보기술(IT)업계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 동맹국에 거래 단절을 요구하자 한국에선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사드는 한국만의 이슈였지만, 화웨이 제재와 중국이 천명하고 나선 재보복은 수많은 공급사슬이 개입된 다국적 이슈다. 화웨이에 공급하는 한국 기업 수는 미국, 일본, 대만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에 공동보조를 맞추면 일방적 보복을 당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동북아시아 분업의 핵심인 IT 교역에서 미·중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다. 화웨이 같은 중국의 대형 IT기업들이 미국, 일본, 한국산 제품을 원하는 것은 우수한 성능과 품질을 구현하는 데 해당 제품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거래 중단이란 강수를 둔 이상 중국 로컬 기업들은 ‘국산 대체’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동북아 분업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의 미국 기업 보복조치마저 가시화한다면 디지털 세계는 끝내 미국과 중국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로선 부담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