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 꿈꾸는 스타트업, R&D 비용 20~30% 특허에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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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 선도 위한 지식재산권'
전문가 간담회
전문가 간담회
“한국에선 창의적인 기업이 제일 먼저 망해요. 지식재산권(IP)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죠.”
박원주 특허청장이 3일 테헤란로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국가 혁신성장 선도를 위한 지식재산 전략’을 주제로 열린 전문가 간담회에서 꺼낸 얘기다. 간담회는 한국경제신문사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23일 공동 주최한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9’의 미디어 세션 일환으로 열렸다. 한국 특허만 신경쓰다간 ‘골탕’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외부 투자’의 맞교환이다. 투자를 유치하려면 먼저 아이디어 보따리를 풀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핵심 기술 및 아이디어가 외부로 유출된다는 데 있다. 베낀 쪽에서 먼저 특허를 등록해 낭패를 보는 일이 수두룩하다. 박 청장은 “기업에 영업이나 연구개발(R&D) 이상으로 중요한 개념이 지식재산권”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특허를 받았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모바일 투표 시스템을 개발한 A사는 국내 특허 소송에서 다섯 번 승소했을 만큼 기반이 탄탄하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선 기술 유출에 속수무책이다. 국내 특허 출원 후 1년이 지날 때까지 다른 나라에 특허를 내지 않아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허청이 추산한 글로벌 모바일 전자투표 시장은 연간 3조원 규모다.
박 청장은 “국내 특허만으로 사업을 하다 골탕먹은 스타트업 사례가 자주 보고되고 있다”며 “국내와 해외 특허를 함께 등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유럽 업체와의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한 번도 패소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서울반도체의 이정훈 대표도 해외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경쟁자들과의 특허전을 산꼭대기를 지키는 고지전에 비유했다.
이 대표는 “올라오는 길을 모두 막아도 적이 땅굴을 파거나 하늘로 침투한다”며 “창업 초기부터 전담 조직을 두고 지식재산권 방어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을 가정할 때 R&D 비용의 20~30%를 지식재산권 분야에 써야 특허 방어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중국 시장을 노리는 기업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베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예전의 중국이 아니란 설명이다.
중국은 연간 130만 건의 특허가 쏟아지는 세계 최대 특허 출원국이며, 특허권자의 소송 승소율이 80%대에 이른다. 수출금액 1억달러를 기준으로 국내 기업이 중국에 출원한 특허는 평균 7.4건(2017년 기준)이다. 독일 14.8건, 일본 24.7건에 비해 턱없이 작다. 그만큼 중국 측의 특허 소송에 취약할 수 있다. ‘IP 생태계’ 조성이 시급
한국의 지식재산권 생태계는 척박하다. 국내 특허 소송 배상액 중간값은 6000만원 선이다. 65억원인 미국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송에서 승소한다 해도 소송비용을 제하면 남는 게 없는 수준이다.
특허 침해로 피해를 입은 기업의 60%가 소송을 포기하는 배경이다. 지식재산권을 고의로 침해했다는 점이 드러나면 피해액의 세 배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오는 하반기 도입되지만 피해 입증이 쉽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광형 KAIST 교학부총장은 “피소를 당한 기업이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기술’이라고 주장하면 특허법원 재판부가 손쓸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유럽처럼 특허 재판부에 증거 제출과 조사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재산권을 강하게 보호하면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시대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 부총장은 “과거 한국 기업은 경쟁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베끼면서 성장하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였지만 지금은 ‘퍼스트 무버(선도자)’인 경우가 더 많다”며 “대기업 입장에서도 지식재산권을 확실히 보호해 주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조황희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은 특허 등록 과정에서 기술이 조금이라도 샐까 봐 회사 금고에 비밀을 보관하는 ‘블랙박스 전략’을 설명했다. 구글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그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과 미 항공우주국(NASA) 등은 계약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직원의 PC를 검열하는 등 회사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며 “블랙박스 전략을 쓰려면 내부 기밀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탄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박원주 특허청장이 3일 테헤란로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국가 혁신성장 선도를 위한 지식재산 전략’을 주제로 열린 전문가 간담회에서 꺼낸 얘기다. 간담회는 한국경제신문사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23일 공동 주최한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9’의 미디어 세션 일환으로 열렸다. 한국 특허만 신경쓰다간 ‘골탕’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외부 투자’의 맞교환이다. 투자를 유치하려면 먼저 아이디어 보따리를 풀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핵심 기술 및 아이디어가 외부로 유출된다는 데 있다. 베낀 쪽에서 먼저 특허를 등록해 낭패를 보는 일이 수두룩하다. 박 청장은 “기업에 영업이나 연구개발(R&D) 이상으로 중요한 개념이 지식재산권”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특허를 받았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모바일 투표 시스템을 개발한 A사는 국내 특허 소송에서 다섯 번 승소했을 만큼 기반이 탄탄하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선 기술 유출에 속수무책이다. 국내 특허 출원 후 1년이 지날 때까지 다른 나라에 특허를 내지 않아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허청이 추산한 글로벌 모바일 전자투표 시장은 연간 3조원 규모다.
박 청장은 “국내 특허만으로 사업을 하다 골탕먹은 스타트업 사례가 자주 보고되고 있다”며 “국내와 해외 특허를 함께 등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유럽 업체와의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한 번도 패소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서울반도체의 이정훈 대표도 해외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경쟁자들과의 특허전을 산꼭대기를 지키는 고지전에 비유했다.
이 대표는 “올라오는 길을 모두 막아도 적이 땅굴을 파거나 하늘로 침투한다”며 “창업 초기부터 전담 조직을 두고 지식재산권 방어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을 가정할 때 R&D 비용의 20~30%를 지식재산권 분야에 써야 특허 방어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중국 시장을 노리는 기업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베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예전의 중국이 아니란 설명이다.
중국은 연간 130만 건의 특허가 쏟아지는 세계 최대 특허 출원국이며, 특허권자의 소송 승소율이 80%대에 이른다. 수출금액 1억달러를 기준으로 국내 기업이 중국에 출원한 특허는 평균 7.4건(2017년 기준)이다. 독일 14.8건, 일본 24.7건에 비해 턱없이 작다. 그만큼 중국 측의 특허 소송에 취약할 수 있다. ‘IP 생태계’ 조성이 시급
한국의 지식재산권 생태계는 척박하다. 국내 특허 소송 배상액 중간값은 6000만원 선이다. 65억원인 미국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송에서 승소한다 해도 소송비용을 제하면 남는 게 없는 수준이다.
특허 침해로 피해를 입은 기업의 60%가 소송을 포기하는 배경이다. 지식재산권을 고의로 침해했다는 점이 드러나면 피해액의 세 배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오는 하반기 도입되지만 피해 입증이 쉽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광형 KAIST 교학부총장은 “피소를 당한 기업이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기술’이라고 주장하면 특허법원 재판부가 손쓸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유럽처럼 특허 재판부에 증거 제출과 조사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재산권을 강하게 보호하면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시대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 부총장은 “과거 한국 기업은 경쟁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베끼면서 성장하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였지만 지금은 ‘퍼스트 무버(선도자)’인 경우가 더 많다”며 “대기업 입장에서도 지식재산권을 확실히 보호해 주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조황희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은 특허 등록 과정에서 기술이 조금이라도 샐까 봐 회사 금고에 비밀을 보관하는 ‘블랙박스 전략’을 설명했다. 구글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그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과 미 항공우주국(NASA) 등은 계약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직원의 PC를 검열하는 등 회사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며 “블랙박스 전략을 쓰려면 내부 기밀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탄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