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살림에 힘겹게 선수생활
"무슨 일 있어도 가족부양 결심"
생계 위해 골프채 다시 잡기도
이정은(23)은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 ‘이정은6’가 새겨진 트로피를 안고 눈물을 쏟았다. 골프와 벌인 긴 사투(死鬪)와 부모님의 헌신을 떠올린 듯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말을 전달하던 통역도 따라 울었다.
2018년 11월 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퀄리파잉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했다는 결과를 받아든 이정은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아버지 이정호 씨, 아버지와 자신을 뒷바라지해준 어머니 주은진 씨와 헤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선수라면 욕심내지 않을 수 없는 LPGA 투어 시즌 전 경기 출전권을 획득하고도 부모를 먼저 생각할 정도로 효심이 깊었다.
이정은은 “집안이 부유하지 못해 빠듯하게 골프를 했고 꼭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힘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늘 다짐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가족과 팬 여러분이 응원해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경기 용인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본 어머니 주씨는 “대회 때마다 숙소를 옮겨 다니기 때문에 변변한 반찬 하나 보내지 못했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이런 큰 선물을 주니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이정은은 전남 순천 출신으로 중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3년간 골프를 배웠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그만뒀다. 클럽을 다시 잡은 것은 생계를 위해서다. “티칭 프로가 되면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는 그는 LPGA 데뷔 첫해 메이저 대회를 제패했다. 100만달러 잭팟도 그의 몫이 됐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고교 2학년 때 베어크리크배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며 국가대표 상비군에 이름을 올렸다. 태극마크를 단 뒤에는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이뤘다. 2017년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 대상, 다승, 평균 타수 등 주요 네 개 부문을 석권한 것도 모자라 베스트 플레이어, 인기상까지 받았다. 지난해엔 한국과 미국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한국 무대에서 상금 1위, 평균 타수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