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동력 꺼져가는 보험업…'3중苦'에 운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위기의 보험산업 (1) 성장동력 꺼졌다
1분기 실적쇼크…순익 18.4%↓
1분기 실적쇼크…순익 18.4%↓
지난해 국내 보험회사들이 거둬들인 보험료는 201조원으로 세계 7위 규모다. 전체 가구의 98.4%가 한 개 이상의 보험에 가입한 ‘보험대국’이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한국 보험업계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단기 실적은 물론 성장성을 보여주는 중장기 지표도 줄줄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손해보험사들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1년 전보다 18.4% 감소했다. 작년에 전년 대비 17.8% 줄어든 데 이어 감소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생명보험사들도 마찬가지다. 영업력 지표인 초회보험료(신규 가입자가 낸 첫 보험료)는 2015년 18조3186억원에서 지난해 10조9026억원으로 3년 새 40.5% 급감했다.
새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해외 사업이나 인슈어테크(보험과 기술의 결합)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저성장·저금리·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보험 수요는 줄고, 보험사는 투자 수익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보험업계가 다중고(多重苦)에 빠졌다”고 우려했다. '가입률 98%' 시장포화에 자본확충 부담까지…보험사 구조조정 착수
“우리 보험산업이 ‘서서히 침몰하는 항공모함’처럼 될까 걱정입니다.”
국내 한 상위권 보험사의 A 대표는 성장은커녕 급락하는 실적을 방어하는 것이 최대 현안이라고 털어놨다. 이 회사는 설계사 수를 대폭 줄이고, 실적이 저조한 지점을 통폐합하는 등 군살 빼기에 나섰다. 천편일률적인 상품 구색을 다양화하고, 정보기술(IT) 역량을 높인다는 구상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A 대표는 “몇 년 전부터 초회보험료(신규 가입자가 낸 첫 보험료)가 뚝뚝 떨어지더니 최근엔 수입보험료(전체 가입자가 낸 보험료)마저 줄기 시작했다”며 “현재로선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보험산업 짓누르는 ‘복합 위기’
한국 보험산업은 1960~1980년대 압축성장기를 타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80~1990년대에는 보험시장 개방과 함께 상품 및 가격 규제도 대폭 자유화됐다. 2000년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연평균 성장률은 각각 7.5%, 12.7%에 달했다.
하지만 저성장·저금리·저출산 등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보험산업의 성장동력은 빠르게 식어버렸다.
국내 보험시장은 포화상태에 접어든 지 오래다. 지난해 가구당 보험 가입률은 98.4%에 달했다. 들 만한 사람은 이미 다 들었다는 얘기다.
내수시장이 꽉 찼으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해외사업도 신통치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해외에 진출한 보험사는 생명보험 3개사, 손해보험 7개사 등 10곳에 그쳤다. 이들 업체의 해외점포 자산(약 5조원)은 총자산(약 777조원)의 0.7%에 불과했다. 세계 100대 보험사의 해외사업 비중이 20~40%대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회계기준 개편 ‘발등의 불’
이런 와중에 보험사에 대한 자본건전성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2022년 도입이 예상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에 대비해 보험사들은 자본금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두 제도는 보험 부채의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 고금리 저축성 상품을 많이 판 국내 보험사들은 부채가 확 불어나 순식간에 ‘장부상 부실회사’로 바뀔 수 있다.
업체마다 저축성 상품(연금보험 등) 대신 보장성 상품(질병·재해 보장 등)의 판매 비중을 늘리고 증자에 나서는 등 나름의 준비는 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대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김영 무디스 연구원(한국 보험산업 담당)은 “시장 포화와 성장 둔화 속에 보험사들의 전반적인 영업 환경이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설계사들이 전속 보험사를 벗어나 외부 조직인 독립법인대리점(GA)으로 대거 이탈하면서 영업 주도권도 흔들리고 있다. GA는 여러 보험사 상품을 동시에 팔 수 있는 데다 설계사 수당도 후하다. 지난해 국내 보험 모집액에서 GA가 차지하는 비중은 52.8%를 기록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점포·인력 구조조정 잇따라
비슷비슷한 상품을 내놓고 설계사 수당만 높여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올 1분기 손해보험사들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4% 급감했다. 업계 ‘빅4’인 삼성화재(-22.9%) 현대해상(-27.9%) DB손해보험(-10.0%) KB손해보험(-20.5%)도 모두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포화된 시장에서 과열된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점이 실적 악화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년 새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지점 수를 각각 9개, 6개 줄였다. 미래에셋생명, NH농협생명, 신한생명, 동양생명 등은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생명보험사들은 전문계약직을 포함한 비정규직 직원도 1년 새 300명가량 줄였다.
보험업계가 다중고(多重苦)에 빠졌지만 정부와 소비자의 시선은 우호적이지 않다. 해마다 정부에 접수되는 금융 민원의 60% 이상이 보험 문제다. ‘실적 지상주의’가 부추긴 무리한 영업과 불완전판매 등이 불신을 자초했다는 자성이 나온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새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해외 사업이나 인슈어테크(보험과 기술의 결합)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저성장·저금리·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보험 수요는 줄고, 보험사는 투자 수익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보험업계가 다중고(多重苦)에 빠졌다”고 우려했다. '가입률 98%' 시장포화에 자본확충 부담까지…보험사 구조조정 착수
“우리 보험산업이 ‘서서히 침몰하는 항공모함’처럼 될까 걱정입니다.”
국내 한 상위권 보험사의 A 대표는 성장은커녕 급락하는 실적을 방어하는 것이 최대 현안이라고 털어놨다. 이 회사는 설계사 수를 대폭 줄이고, 실적이 저조한 지점을 통폐합하는 등 군살 빼기에 나섰다. 천편일률적인 상품 구색을 다양화하고, 정보기술(IT) 역량을 높인다는 구상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A 대표는 “몇 년 전부터 초회보험료(신규 가입자가 낸 첫 보험료)가 뚝뚝 떨어지더니 최근엔 수입보험료(전체 가입자가 낸 보험료)마저 줄기 시작했다”며 “현재로선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보험산업 짓누르는 ‘복합 위기’
한국 보험산업은 1960~1980년대 압축성장기를 타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80~1990년대에는 보험시장 개방과 함께 상품 및 가격 규제도 대폭 자유화됐다. 2000년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연평균 성장률은 각각 7.5%, 12.7%에 달했다.
하지만 저성장·저금리·저출산 등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보험산업의 성장동력은 빠르게 식어버렸다.
국내 보험시장은 포화상태에 접어든 지 오래다. 지난해 가구당 보험 가입률은 98.4%에 달했다. 들 만한 사람은 이미 다 들었다는 얘기다.
내수시장이 꽉 찼으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해외사업도 신통치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해외에 진출한 보험사는 생명보험 3개사, 손해보험 7개사 등 10곳에 그쳤다. 이들 업체의 해외점포 자산(약 5조원)은 총자산(약 777조원)의 0.7%에 불과했다. 세계 100대 보험사의 해외사업 비중이 20~40%대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회계기준 개편 ‘발등의 불’
이런 와중에 보험사에 대한 자본건전성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2022년 도입이 예상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에 대비해 보험사들은 자본금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두 제도는 보험 부채의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 고금리 저축성 상품을 많이 판 국내 보험사들은 부채가 확 불어나 순식간에 ‘장부상 부실회사’로 바뀔 수 있다.
업체마다 저축성 상품(연금보험 등) 대신 보장성 상품(질병·재해 보장 등)의 판매 비중을 늘리고 증자에 나서는 등 나름의 준비는 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대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김영 무디스 연구원(한국 보험산업 담당)은 “시장 포화와 성장 둔화 속에 보험사들의 전반적인 영업 환경이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설계사들이 전속 보험사를 벗어나 외부 조직인 독립법인대리점(GA)으로 대거 이탈하면서 영업 주도권도 흔들리고 있다. GA는 여러 보험사 상품을 동시에 팔 수 있는 데다 설계사 수당도 후하다. 지난해 국내 보험 모집액에서 GA가 차지하는 비중은 52.8%를 기록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점포·인력 구조조정 잇따라
비슷비슷한 상품을 내놓고 설계사 수당만 높여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올 1분기 손해보험사들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4% 급감했다. 업계 ‘빅4’인 삼성화재(-22.9%) 현대해상(-27.9%) DB손해보험(-10.0%) KB손해보험(-20.5%)도 모두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포화된 시장에서 과열된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점이 실적 악화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년 새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지점 수를 각각 9개, 6개 줄였다. 미래에셋생명, NH농협생명, 신한생명, 동양생명 등은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생명보험사들은 전문계약직을 포함한 비정규직 직원도 1년 새 300명가량 줄였다.
보험업계가 다중고(多重苦)에 빠졌지만 정부와 소비자의 시선은 우호적이지 않다. 해마다 정부에 접수되는 금융 민원의 60% 이상이 보험 문제다. ‘실적 지상주의’가 부추긴 무리한 영업과 불완전판매 등이 불신을 자초했다는 자성이 나온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