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 현장(758가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가 현장을 장악해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1주일째 고공농성을 벌이던 박모씨가 경찰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 박씨는 신생 노조인 민주연합 소속이다. 시위로 7일간 공사가 전면 중단되면서 시공사는 지체보상금과 금융이자, 협력사 위약금 등 하루 4억3000만원씩 30억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 “우리 조합원을 우선 채용하라”는 노조 간 이권 다툼으로 건설현장 곳곳이 멈춰서고 있다. 건설현장 집회·시위는 문재인 정부 들어 2년 새 두 배 가까이 세를 불린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주도하고 있다. 일자리를 빼앗길 처지가 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노조도 맞불을 놓으면서 건설현장은 불법·폭력 시위로 뒤덮이고 있다. 양대 노총 소속 타워크레인노조는 4일부터 파업을 예고했다. 전국 2500여 개 타워크레인이 멈출 경우 입주 지연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노조의 막무가내식 횡포에 시공사들은 속수무책이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의 한 재건축 현장은 민주노총 조합원 50여 명이 다른 근로자들의 출근을 막으면서 나흘간 공사가 중단됐다. 한 시공사 대표는 “공사가 중단되면 레미콘, 크레인 등 협력업체에도 위약금을 물어줘야 한다”며 “그럼에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토로했다.민갑룡 경찰청장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건설노조의 불법·폭력행위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사법조치하겠다”고 말했다."민노총 건설노조, 일당 5만원 더 챙기며 일은 절반만 해"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횡포에 전국 건설현장이 노조 간 ‘밥그릇 전쟁터’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2년 새 두 배 가까이 규모를 불린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우리 조합원을 채용하라”고 요구하면서다. 건설경기 불황으로 일감이 주는 데다 민주노총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업장 하나를 두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물론 신생 노조도 밥그릇 싸움에 뛰어들며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건설회사들은 고유 권한인 하도급 계약까지 노조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양대 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노조가 4일 동시파업을 예고하면서 전국 주요 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 2500대가 멈춰 설 위기에 처했다.공사장 6곳에서 집회 ‘52건’지난달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서울 건설현장 곳곳을 점거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만 면목동, 일원동, 창동 등 건설현장 6곳에서 52건의 집회 신고가 접수됐다. 누적 신고 인원은 2만2200명에 달한다.강남구 일원동의 한 재건축 건설현장은 5월 내내 노조 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한 골조업체가 한국노총 조합원 20여 명을 채용하자 민주노총 조합원 400여 명이 “우리 노조원을 채용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한국노총 조합원의 출근을 방해했고, 두 노조 간 주먹다짐이 벌어져 13명이 다치기도 했다. 집회 한 달 만인 지난달 29일에야 한국노총과 시공사 간 협상이 타결돼 갈등이 마무리됐지만, 두 노조의 횡포에 공사가 나흘간 중단됐다. 이 현장에 속한 한 골조업체 관계자는 “인건비, 전문성 등을 따져 공정하게 채용했다고 몇 번을 설명해도 민주노총은 소속 조합원을 뽑으라고 압박했다”고 했다.건설노조의 폭력·불법 행위는 점차 거세지고 있다. 지난 1월 민주노총 조합원 3명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충청북도 도청에서 접시와 유리탁자를 깨뜨리는 등 공무원을 위해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역 인력과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2월엔 대전충북지부 크레인지회장 A씨(32)가 폭행 혐의로 대전지법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노조가 건설현장에서 활개를 치는 것은 현 정부가 노조의 횡포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한 건설사 임원은 “조직을 크게 확대한 민주노총이 마치 완장이라도 찬 듯 행세하고 있고, 이를 지켜본 다른 노조까지 강성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2007년 전국 단일노조로 출범할 당시 1만5000여 명이었던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수는 지난해 14만 명을 넘어섰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산별노조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 일자리가 줄면서 노조 간 다툼이 더 치열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4월 주택 착공 실적은 3만6389가구로, 1년 전(4만3264가구)보다 16% 줄었다.건설사 비용 부담 갈수록 늘어건설노조의 횡포는 건설사와 입주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노조 조합원이 비조합원에 비해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인건비는 비싸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전문건설업체 대표는 “목조공사 기준으로 민주노총 조합원은 팀장이 일당 27만원, 팀원은 23만원을 받는데 이는 비조합원 일당(18만~22만원)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생산성은 비노조원의 절반도 안 돼 노조원을 쓰면 공사비가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노조 파업에 공사가 2주만 중단돼도 협력 업체가 다른 건설현장으로 다 떠나버린다”며 “새 업체를 구해야 해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급하게 공사하다 보면 부실시공 우려도 있다”고 했다.건설사들은 조합 관리비 명목으로 노조에 ‘전임비’를 내야 한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노조 한 팀이 받는 전임비가 매월 100만~120만원인데 대여섯 팀의 노조가 들어오면 매월 500만원 정도 나가다 보니 영세 업체는 공사를 아예 접는 사례도 많다”고 설명했다.양대 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노조는 건설현장의 소형 타워크레인 철폐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4일부터 무기 파업을 예고했다. 아파트 입주 지연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 건설노조 횡포에 여론이 들끓자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폭력과 불법을 끌어안고 가는 게 정부의 촛불정신은 아니다”며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양길성/김순신 기자 vertigo@hankyung.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소속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겉으로는 ‘차별 철폐’와 ‘비정규직 보호’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조합원 이기주의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민주노총 소속 주요 산별노조로는 금속노조·화학섬유노조(대기업), 공공운수노조(공무원·공기업), 전교조(교원), 사무금융노조(금융업), 보건의료노조(의료업)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 청년이 희망하는 일자리다.민주노총 소속 노조는 과도한 요구와 파업을 반복하며 임금을 끌어올려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 화섬노조 소속 한화토탈 노조는 지난 3~4월 30여 일간 파업을 벌였다. 2017년 평균 연봉 1억2100만원을 받은 이들은 작년 8월 시작한 2018년도 교섭에서 10.3% 인상을 요구했다. 강경투쟁 끝에 결국 업계 평균(2.2%)을 웃도는 2.7% 인상률에 격려금 300만원까지 따냈다.대기업 노조의 파업은 협력사 피해로 이어진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이 파업으로 조업을 중단하면 협력사는 자동으로 일감이 끊겨 공장을 돌릴 수 없다.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가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감소로 직결된다는 얘기다.민주노총 화섬노조는 지난해 4월 네이버를 시작으로 넥슨, 스마일게이트, 카카오에 차례로 들어섰다. 화섬노조는 노조 설립 당시 ‘당근’으로 내건 포괄임금제 폐지를 차례로 달성하고 있다. 야근이 잦은 정보기술(IT)업계 특성상 연장근로수당을 총액으로 받는 포괄임금제가 사라지고 실제 일한 만큼 야근수당을 받으면 연봉이 대폭 뛸 전망이다. 상장사인 네이버의 평균 연봉은 7706만원, 카카오는 8512만원이다.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1만4492원으로 정규직(2만1203원)의 68.3% 수준이었다. 2017년 69.3%보다 1.0%포인트 떨어졌다.이런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와 그에 따른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도입이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및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 방안은 민주노총을 핵심으로 하는 노동계 반발에 막혀 있다.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양극화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결국 저소득층 일자리를 줄이고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만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택시단체와 카카오는 지난달 23일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 도입을 논의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는 카카오 플랫폼을 이용해 고급택시는 차종에 따라 요금이 높아지고, 소형택시는 요금이 낮아지는 서비스다. 이는 공유경제 플랫폼에 위협받고 있는 기존 택시업계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업 모델이다. 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민택노련)은 법인 택시기사의 월급제 도입이 선행되지 않으면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타다’ 등 승차공유 플랫폼 도입에도 반대하고 있다.민주노총이 4차 산업혁명 관련 논의에 잇따라 ‘몽니’를 부리면서 혁신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가뜩이나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 사이에선 기존 일자리만 지키려는 태도에 ‘민주노총 캐슬’이라는 신조어도 나오고 있다.혁신의 발목을 잡는 민주노총 몽니는 산업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영리병원에 대해 의료 양극화를 불러온다며 ‘제주 투자개방형 병원 허가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을 더불어민주당과 제주도에 꾸준히 요구했다. 문제는 민주노총의 압박이 통한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지난 4월 허가를 철회했다. 제주녹지국제병원은 폐업 수순에 들어갔고 134명의 직원은 일자리를 잃었다.1000여 명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됐던 ‘광주형 일자리’ 계획도 민주노총은 반대했다. 민주노총은 초임 연봉을 3500만원으로 낮추고 주거·복지를 정부가 지원하는 이 계획이 평균 연봉 9200만원을 받고 있는 현대차 직원들의 처우를 악화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 혁신 과정에선 기존 산업은 구조조정을 겪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며 “노조가 산업혁신을 가로막는 것은 사회에 발을 딛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과거에 머물러 있는 민주노총에 등을 돌리는 청년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다. 전교조에 따르면 조합원(5만여 명) 가운데 40~50대와 20~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7 대 3 수준이다. 전교조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2017년 설립된 교사노조연맹의 20~30대 조합원 비율은 90%에 달한다.김순신/이주현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