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투자은행(IB)들이 높은 금리를 내세워 발행어음(만기 1년 이하 단기어음) 판매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발행어음 시장의 신규 주자로 합류한 KB증권이 연 5%의 금리를 주는 특판상품을 출시하자 발행어음 1호 사업자인 한국투자증권도 고금리 특판상품으로 ‘맞불’을 놓았다. 증시 부진으로 고금리 확정 상품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으려는 증권사 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특판 vs 특판…뜨거운 발행어음戰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3일부터 6개월 만기에 연 3.0%의 금리를 제공하는 약정형 발행어음 특판상품 판매에 나섰다. 기존 VIP 고객과 신규 계좌를 개설한 개인 고객이 판매 대상이다. 총 판매 규모는 1000억원이다. 개인별 최소 매수금액 제한은 없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3월에 구조가 비슷한 발행어음 상품 2000억원어치를 출시해 단기간에 ‘완판’에 성공하자 이번에 추가 판매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KB증권이 지난 3일 발행어음 출시와 함께 금리가 연 5%인 특판상품을 내놓자 한국투자증권 역시 특판상품으로 대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KB증권은 1년 만기 적립식 발행어음 가입자 중 선착순 1만 명을 대상으로 연 5%의 금리를 주기로 했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신규 가입자 중 선착순 5만 명에게도 3개월간 발행어음 투자로 연 5%의 이자를 제공한다. 이런 공격적인 전략에 힘입어 KB증권은 출시 첫날인 3일 하루 만에 원화 발행어음 1차 발행 목표치인 5000억원어치를 모두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발행어음 판매 전쟁의 포문은 발행어음 2호 사업자인 NH투자증권이 열었다. 이 증권사는 지난 1월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선착순 5000명을 상대로 연 5%의 금리를 제공하는 적립형 발행어음(1년 만기)을 내놓은 데 이어 2월엔 6개월 만기에 연 3.5% 금리를 주는 CMA 발행어음 특판상품을 출시했다. 그러자 한국투자증권도 지난달 신규 고객 중 선착순 5000명에 한해 금리 연 5%짜리 적립형 발행어음 상품을 선보이며 판매 경쟁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신규 발행어음 사업자인 KB증권까지 가세했다.

단기 고금리상품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면서 초대형 IB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발행어음 판매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경기지표 및 기업 실적 악화,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증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채권시장으로는 대규모 자금이 몰리면서 채권 금리는 하락(채권가격은 상승)하고 있다. 30년 만기 국고채 금리(5일 기준 연 1.704%)마저 기준금리(연 1.75%)를 밑돌 정도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장기 금리상품의 매력이 약해지자 기관투자가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도 단기간에 높은 이자를 주는 금융상품에 적극적인 투자 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초대형 IB들의 특판 발행어음 인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발행어음을 둘러싼 초대형 IB 간 경쟁의 최종 결과는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발행어음 조달 금리를 높게 제시할수록 그보다 높은 운용수익률을 올려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며 “최종 승자는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활용해 고수익을 내는 증권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