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경기 성남시의료원 앞은 사람 한 명 없이 한적했다. 굳게 닫힌 문에는 ‘외부인 절대출입금지’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당초 올해 4월이던 의료원 개원일이 연말로 연기돼서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과 폭염으로 작업시간이 줄면서 공사에 차질이 생겼다. 시공사인 A사는 발주처인 성남시에 공사 기간을 53일 더 늘려달라고 요구했고 지난 2월에야 공사를 마쳤다.

週 68시간으로 공사계획 짰는데…건설현장 44% "공사기간 못 맞춘다"
지난해 7월 시행한 주 52시간 근로제 여파로 지하철과 병원 등 실생활과 밀접한 인프라 건설이 줄줄이 늦어지고 있다. 일하는 시간이 줄면서 공사 기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추가 인력 투입으로 공사비가 증가한 건설현장도 허다하다. 늘어난 공사비가 아파트 분양가 등에 반영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여섯 번째 고등검찰청인 수원고검 건물은 계획보다 2개월 늦은 올해 3월 준공됐다. 지난해 7월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작업 시간이 줄면서다. 수원고검 개원이 늦어지면서 경기 남부권 지역 주민이 혜택을 받는 시점도 그만큼 늦어졌다.

지난해 12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건설공사의 44%가 공기 연장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건설회사 세 곳이 맡고 있는 건설사업 109개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줄어든 건설현장 운영 시간이 발목을 잡았다.

건산연은 주 52시간제 시행 후 평균 주당 현장 운영시간이 60시간에서 57.3시간으로 2.7시간 줄었다고 분석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 제도가 시행된 지난해 7월 1일 이전 계약한 공사는 주 68시간에 맞춰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산정했다”며 “구조적으로 ‘공기 맞추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하철과 철도사업 완공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철 11개 공사 중 9개, 철도 14개 공사 중 11개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공기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일선 건설현장에선 근로시간 단축 후 인력 투입이 50% 늘었다고 호소했다. 서울지하철 연장사업에 참여한 업체 관계자는 “교대근무 비중이 높아 계획된 공기를 맞추려면 50% 가까운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6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계약업무 처리 지침’을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 전달했다. 개정 근로기준법을 시행한 지난해 7월 1일 이전 발주한 계약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공사 기간을 연기하거나 준공 지연이 불가피한 경우 늘어난 사업비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시공사가 발주처에 요구하면 된다. 건설업체들은 해당 지침의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계약 변경을 위한 세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더니 세부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공공공사 발주기관에 확인한 결과 실제로 시공업체들이 공사 기간 연장이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해명했다.

민간공사에서도 디벨로퍼·건설업체의 경영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파트 같은 민간공사는 계약 변경이 어려워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건설사들은 주장했다. 공기를 맞추려면 인력이 늘고 장비 대여 시간도 길어져 공사비가 늘어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최은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사현장 37곳의 원가 계산서를 분석한 결과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간접노무비가 평균 12.3% 늘었다”고 설명했다.

늘어난 공사비는 분양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한 서울 시내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이유로 공사비를 2~3% 올려 제시하고 있다”며 “일반 분양가와 조합원 분양가를 가능한 한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성남=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