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지금까지 이런 세대는 없었다
예상이 틀렸기를 바랐는데 정말 그렇게 갈 모양인가 보다. 작년 3월 2일자 이 칼럼(‘정년 65세 연장 담합 시나리오’)에서 예측했던 게 현실이 돼 간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뜬금없이 65세 정년연장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명분도 예상대로다. 고령화와 생산인구 감소, 정년과 연금 수급연령 간 간극 등을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년연장으로 소득과 소비가 늘면 세수 증가, 재정 부담 감소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소득주도 성장’의 고령화판이다.

고령화 속도에 비춰 ‘65세 정년’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60세 정년 도입 3년 만에 별 대안도 없이 또 연장론을 꺼내든 것은 그 의도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치권이 환갑을 눈앞에 둔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를 의식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대선 때면 당장 수혜자가 될 50대 유권자(863만 명)가 일자리가 급한 20대(668만 명)보다 약 200만 명 많다(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최저임금 1만원’처럼 모든 정당이 앞뒤 안 가리고 덥석 물 소지가 다분하다. 내년 총선 공약일 수도 있겠다.

현장에선 잔뜩 군불을 때고 있다. 민노총 산하 노동조합들이 단체협약 요구안마다 정년연장을 들이민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정년을 연금 수령 직전(61~64세)까지 늘리고, 무늬만 임금피크제(59세 임금동결, 60세 10% 감축)마저 폐지하라고 요구한다. 버스 파업이 잠잠해진 것도 정년을 62~63세로 늘려준 게 단단히 한몫했다.

그 이면에 산업현장의 고령화가 있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력산업의 생산직 평균연령이 40대 후반이고, 50대 비중은 30~40%에 이른다. “현장에는 회사 앞날보다는 ‘있을 때 챙기자’는 정서가 있다”는 게 가까이서 지켜본 금융계 인사의 전언이다.

정치권에서도 586과 그 아래 간 세대갈등이 휴화산처럼 응축돼 있다. 당·정·청의 핵이 된 586이 민주화운동 경력 하나로 30대에 정치에 입문해 20년 안팎을 누린 데 대한 내부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게 표출된 것이 4년 전 이동학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혁신위원이 이인영 의원 등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에게 던진 ‘586 전상서(前上書)’라는 공개서한이다.

그는 “저희 세대(30대)가 느끼는 586 선배들은 후배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시대는 빠르게 변해가는데 우리 사회의 새로운 아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란 비판과 함께 586의 험지 출마와 용퇴를 주문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싸가지 없다”는 비난이었고, 586 당사자들은 흐지부지 뭉갰다. 다른 정당들도 ‘젊은 피’ 수혈에는 시늉만 냈다.

그 결과 20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5.5세로 역대 최고령이 됐다. 45세 이하 의원은 30대 2명을 포함해 고작 10명(3%)이다. 그러니 586에게 정년연장은 자신들의 정치수명을 늘리고 세대교체론을 방어할 신의 한 수나 다름없다.

586처럼 정치 기득권집단이자 노동귀족으로 군림하는 ‘덩어리 세대’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3저(低) 호황에 직장에 쉽게 들어가고, 외환위기 때는 젊어서 무탈하고, 40대가 돼서도 청년 코스프레 하다가, 50대에는 정년연장 수혜자가 되고, 60대에도 ‘평생 현역’을 구가할 판이다. 586 강남좌파의 위선에 질리고 노동귀족의 탐욕에 경악하는 청년들의 성토와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 되뇌었다. 민주와 정의를 외치던 586세대라면 “그 힘든 시절을 우리가 겪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맞다. 한 여성 정치인은 “86세대는 87년의 지나간 잔칫상 앞에 서성이는 듯하다”고 했고, 한 586세대 작가는 ‘586, 영웅인가 괴물인가?’라고 썼다. ‘구시대의 막차’가 될 것인가, ‘새 시대의 첫차’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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